세계 공용어로 손색없는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한글의 세계화
문자가 없는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이 세계 처음으로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하고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해 한글 세계화 프로젝트가 열매를 맺었다. 훈민정음학회와 관련 학계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州) 부톤섬 바우바우시(市)는 최근 이 지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語)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을 도입했다.
시는 이에 따라 지난달 21일 찌아찌아족(族) 밀집지역인 소라올리오 지구의 초등학생 40여명에게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교과서를 나눠주고 주 4시간씩 수업을 시작했다. '바하사 찌아찌아1'이란 제목의 이 교과서는 '부리'(쓰기)와 '뽀가우'(말하기), '바짜안'(읽기)의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든 텍스트가 한글로 표기돼 있다. 교과서에는 찌아찌아족의 언어와 문화, 부톤섬의 역사와 사회, 지역 전통 설화 등의 내용은 물론 한국 전래동화인 '토끼전'도 들어 있다. 찌아찌아족의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우리가 쓰는 방식대로 사용하지만 한국에서는 사라진 비읍 순경음(ㅸ)을 쓰는 점이 눈에 띈다.
미국에서 한국어도 서비스가 확산하고 있다. 각 지자체가 학부모에게 보내는 안내는 물론이고, 각종 선거 안내, 미술관과 박물관,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 등에서 한국어 서비스는 이제 기본이다.
세계언어학자들은 가장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 인정하며 한글을 세계공용어로 채택한 바 있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디스커버》는 지난 1994년 7월호 특집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한글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한마디로 말해서 한글은, “세계 문자역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라는 것이다.
세종임금의 한글창제기반은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
이처럼 오늘날 세계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은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면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편하게 살게 할 것인가를 재임기간내내 고민하고 실천했던 조선의 위대한 세종임금의 한글창제에 있다.
세종임금은 당시 계급적이고 기득권적인 소중화 사대주의 유교정치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자식들과 더불어 한글을 연구한 지 10여 년 만에 마침내 28자의 정음을 창제하였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한글창제는 세종대왕 혼자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세종대왕이 재위25년(1443년)에 전격적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당시 집현전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최만리 등 일곱 명의 노장학자들은 반대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의 소장학자들과 더불어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과 동국정운(1447년) 등 한글관련 서적의 편찬사업을 계속 추진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아무 불편없이 언어와 문자를 활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군주로서의 의지가 확고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종임금의 한글창제의 배경에는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한글의 원형 글자가 있었다.정작 한글을 창제한 당사자인 세종대왕은 솔직히 “옛 글자를 참고했다”고 말했다.신경준이 지은 <훈민정음 운해>(1750년)에는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사용하던 속용문자가 있었다”고 하였으니, 한문 외에도 민간에서 사용되던 문자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최만리의 반대상소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자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양반계급에 속한 최만리는 언문을 왜 새로 만드냐며, 하물며 옛 글자와 똑같은 것을 왜 다시 만들 필요가 있냐고 세종대왕에게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세종임금이 실용적으로 변형시킨 한글의 고대 문자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배달국 녹도문자를 변형시킨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다.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28자)과 단군조선시대의 문자로 알려져 있는 가림토 문자(38자)를 비교해 보면 모음이나 자음의 모양이 두루 비슷하다. 외형적으로 보더라도 가림토 문자는 가히 한글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발음의 원리는 따로 만들었으나 글자는 옛글을 본떴다’고 한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말이 정확히 맞는 것이다. 실제로 가림토 문자의 38자 중에서 10자를 빼면 훈민정음 28자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가림토 문자는 『한단고기』의 「단군세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단군시대 때, 제3세 단군이었던 가륵단군께서 BC2181년에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라 불렀다고 하였다. 가림토 문자 38자 중에 X, M, P, H 및 I, O 등 알파벳과 유사한 글자에 주목하기도 한다(참고로 알파벳의 역사는 3000년이다). 그밖에도 중국의 갑골문자와 일본의 초기 신대문자, 몽고의 파스파문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등이 단군시대 가림토 문자와 유사하다는 학설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참고로 알타이어의 사용범위는 터키, 몽고, 티벳, 만주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 등이다).
세계문자의 기원 - 신시 배달국 녹도문자
그리고 단군조선 이전 배달국 한웅시대의 녹도문에 대한 것이다.
배달국은 BC3898년에 건국되어 18명의 환웅천황이 1565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그런데 『한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제3]을 보면, 초대 한웅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지 혁덕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힌트를 얻어 궁구한 끝에,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또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제5」의 기록을 보면, 환웅천황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鹿圖:사슴의 발자국 모양)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