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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흑해안안에서 한반도.일본열도까지 분포된 적석목곽분과 금장식문화
가야와 신라.일본의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유럽지역의 스키타이.아시아 흉노문화와 동일함으로 이들은 본래 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원한 유목민들임을 알 수 있다.
북만주 초원지역에서 시작되는 아시아 유목민들을 그리스에서는 스키타이,중국에서는 흉노(선비.돌궐.몽골)라 불렀다. 스키타이.흉노.선비.몽골.돌궐(터키).거란 모두 족속이름만 다를 뿐 동일 혈통의 아시아 유목민족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단고기]때에는 단군조선시대에는 단군천황의 남동생들이 진조선(진한)의 제후국들에 해당하는 몽고리(몽골).흉노.선비 등 군장이나 대인, 또는 왕으로 임명되기도 했기 때문에 단군천황의 후예들이기도 하다.이 초원세력이 유라시아 초원을 무대로 5호16국, 신나라, 수나라,당나라,터키,헝가리 등 많은 나라들을 건설하면서 중국과 유럽을 지배했던 것이다.
▲샤먼 모자들 시베리아 에네트족 무당모자(좌),카자흐스탄 이씩고분 출토 모자(우):신라금관의 기원
▲시베리아 무당의 모자들 예니세이 무당 모자(좌),오스티악 무당 모자(가운데),부라이트 무당 모자(오른쪽) : 이 모자들 위에 꽂은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이 신라금관의 세움장식과 닮았다.
▲좌로부터 알타이 지방의 이시크고분에서 출토된 기원전 5~4세기.신라장식과 동일.
산악지대에 정착한 이유로 적석총(피라미드)구조인 부여(고구려.백제/백제초기 온조세력은 적석총이였으나 구태세력이 백제를 장악한 후에는 산동지역의 동이족들의 무덤양식을 한반도 토착무덤양식과 융합시킨 마조선인들의 전방후원분으로 변경)매장구조와는 달리 초원을 배경으로 이동생활을 해야 하는 유목민들의 매장구조인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면 금장식의 경우 시베리아 지역의 먹이감이 되는 사슴.하늘과 통한다고 보는 생명수(신단수)을 상징화한 동북아 시베리아 지역의 샤먼왕관을 더 화려하고 세련되게 금장식으로 치장한 왕관들과 금장식구들,그리고 전쟁에 출전하기 전에 사람의 피나 동물의 피를 담아서 마셨다는 각배, 그리고 청동동복, 제사용 그릇토기 등입니다. 스키타이족의 활동무대였던 흑해연안에서 유라시아 초원을 따라 한반도 남부, 그리고 일본열도에 분포되어 있다.
▲스키타이 금관들 흑해북안 출토 샤르마트 금관(왼쪽),샤바르칸 탈리아테떼 금관(오른쪽) : 신라 금관 세움장식과 유사하다.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800년에 유럽에 출현한 아시아 유목민들인데, 아마도 만주초원세력(수유족=흉노=스키타이)이 서방으로의 진출은 단군조선의 권력변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즉, 21대 소태단군천황이 강력한 기마군대를 보유한 수유족 출신의 좌현왕 서우여를 단군으로 찜하여 승계시키려고 했는데, 또 다른 강력한 기마군대를 보유한 고구려의 선조가 되는 고씨족의 우현왕 색불루가 이를 취소하라고 소태단군천황에게 요구하고 이를 소태단군이 거부하자, 백악산 아사달(장춘)에서 쿠테타를 일으켜 단군천황에 오르니 이 때가 기원전 1200년경이다.
이 때 반색불루세력인 수유족(=기자족) 세력이 단군조선의 직접통치(진조선의 통제를 받는 제후국)에서 벗어나 몽골초원으로 이주하여 세력을 형성한 후에 일부가 서쪽으로 진출하니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든 스키타이족이요, 일부가 중국을 지배하게 되니 흉노족이라 봅니다. 흉노제국이 망하고 선비제국이 형성되었다해도 결국 유목세력이니 흉노나 선비나 몽골이니 돌궐(터키)나 결국 같은 유목 한국인들이요,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백인들과 혼혈족(투르크.위그르족)으로 형성되기도 했지만 그들 역시 유럽을 지배한 터키제국을 형성했다.
흉노.선비족이 단군조선의 통치구조인 선우를 중심으로 좌현왕과 우현왕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2.선비모용씨 전연의 고구려 공격과 선비족의 한반도 남부 유입배경
흉노제국은 선우 묵특때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리고 묵특 사후 흉노족은 북흉노와 남흉노로 양분되자, 한나라는 북중국의 남흉노와 몽골지역의 선비족과 에니세이강 지역의 정령으로 하여금 북흉노를 공격하도록 이간질을 하니 바로 한족들이 자주 사용했던 전법인 이이제이(한족들의 표현으로 오랑캐로 하여금 오랑캐를 공격하여 제거하는 분열책)였다.
결국 선비족은 북흉노를 공격하여 승리한 댓가로 북흉노족을 흡수하고 북흉노땅을 차지하게 되어 단석괴라는 선우때는 흉노제국과 맞먹는 선비제국을 건설하여 북방의 패자가 된다. 이 당시 북흉노족의 일부가 서쪽으로 다시 이동하여 게르만족을 로마제국영역으로 몰아가 결국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게 되니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선비족의 선우 단석괴가 죽자 선비족은 양분되어 선비족의 일부인 모용씨족의 경우 북중국 지역에 전연을 개국한다. 전연은 전연아래 한족국가 동진을 공격하기 위해 고구려를 324년에 고구려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고구려는 끝내 항복하지 않고 환도성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환도성은 전연의 모용황에 의해 완전히 불태워지고 초토화된 상태였고, 미천왕의 무덤도 도굴된 상태였다. 미천왕비 주씨와 고국원왕의 왕비를 볼모로 잡아가고 5만의 고구려인들을 압송해 가서 고구려는 무려 13년 동안이나 괴로움을 당해야 했었다.
결국 고국원왕은 사신을 보내어 신하국이 되겠다고 하니 왕비가 석방되었다. 그러나, 전연은 모용황의 손자 모용위가 왕으로 있을 때 숙부 모용수가 동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모용위가 모용수에 위협을 느껴 모용수를 죽으려 하자, 모용수가 티벳계 나라 전진으로 도망가 전진군대로 쳐 들어와서 멸망을 시키고 나라를 개국하니 후연이다. 후연은 모용수의 막내 아들 모용희가 폭군정치를 하자, 한족출신 풍발이 고구려 출신 고운(모용보의 양자 모용운)을 왕으로 세우니 북연이다. 북연은 결국 선비족 탁발씨의 나라 북위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결국 인과응보에 따라 고구려를 공격했던 선비족의 나라 전연은 결국 내분과 분열과 동족인 선비족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