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고향은 아시아 바다를 지배하면서 해상무역을 독점했던 장보고 장군이 청해진을 설치했던 전남 완도(약산)다. 고려시대 황궁의 약초지배지였다는 약산(조약도)옆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전라도.충청도.경상도 3도 조선수군을 통제하는 조선3도 수군통제사령부를 두었던 고금도가 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자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고금도에서 80일간 안치했다가 고향 충남 아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전투를 지휘한 조선3도 수군 통제사령부-전남 완도 고금도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고금도로 운구해 와서 80여일간을 안치한 후 충남 아산으로 옮겨 갔다.
"12척 배로 싸우기 보다는 100척이라도 준비하고 100척이라도 가지고 나가 싸울 수 있는 국가지도자들이 필요하다는 강조하고 싶다"는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가 KBS사극 [불멸의 이순신]으로 방영되면서 좌절과 절망, 그리고 극복이라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도 했다. 이순신은 충남 아산의 몰락해 가는 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시험에도 여러 번 낙방하고 말단직을 전전했으며, 녹둔도(사할린)에서 여진족을 몰아 내는 장병으로 근무하기도 했고 임진왜란 중에서는 잦은 병치레로 고통당해야 했다. 지금 면장에 해당하는 현감(정읍현감)으로 있다가 친구 유성룡의 간청으로 인해 전라좌수사(좌수영-여수)가 되어 원칙에 따라 군기를 잡고 철저한 전쟁준비태세로 임진왜란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유성룡이 선조로 하여금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기용한 건 유성룡이 일본의 조선침략의 기미를 알아 채고 자신에게 철저하며 소신있고 원칙주의자인 이순신으로 하여금 강한 조선수군으로 육성하여 일본침략을 대비하게 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다.
즉, 이순신은 유성룡의 사람보는 눈을 통하여 기용된 셈이며, 조선수군은 이러한 이순신을 통하여 강한 수군으로 육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순신을 제거해야 하는 일본으로써는 조선의 선조와 조정의 간신배들을 움직여 결국 이순신을 부산포를 공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이순신은 3도 수군통제사 직을 박탈당하고 서울로 압송당하여 옥에 갇혔다. 그러나, 이순신이 선조의 명령에 불복종한 건 이미 그것이 일본의 계략이며, 토요토미히데요시의 명령으로 부산포 가는 해로에 이미 조선수군을 격파할 포를 설치하고 이순신의 조선수군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세작들을 통하여 이미 이러한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서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죽음을 면하고 도원수 권율장군의 휘하에서 사병으로 백의종군해야 했다. 원균이 3도 수군통제사로 있으면서 일본수군에 대패당하고 사망하자, 겨우 배 12척이 남았다. 조선조정은 다시 이순신을 3도 수군통제사로 삼았다. 다 망가진 조선수군을 재건해야 하는 이순신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돌며 흩어진 조선수군을 모으고 수군을 보강하여 조선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참여하라는 선조에게 그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신이 있는 한 일본수군이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편지내용으로 자신감과 애국충절을 보여 주었다. 해남과 진도사이를 강하게 흐르는 조류를 이용하여 쇠줄을 걸고 쇠줄 건너편에서 일본수군을 기다렸다가 급하게 일본수군쪽으로 물살이 강하게 흐르자 집중포화를 퍼부어 130여척을 격파하는 세계해전사상 유례없는 '명량대첩'을 기록한 것이다. 기세를 몰아 명나라 수군과 연합하여 일본수군을 몰아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으니 승리해도 민심이 이순신에게 넘어 갔다고 생각한 선조와 간신배들이 자신을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갑옷을 벗어 던지고 일본수군의 총탄에 맞아 죽음을 택했다는 가설과 죽지 않고 대마도가 가서 영웅대접을 받으며 일본조정에 조선포로들을 풀어 줄 것을 요청하여 조선포로들을 석방시켰으며 이순신의 후손들은 일본의 지배층이 되어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과의 화해교류에 힘을 썼다는 가설이 논쟁을 벌이며 아직도 이순신의 죽음에는 많은 의혹이 남아 있다. 그래서 [불멸의 이순신]이 된 것이다.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호남이 없으면 국가(조선)도 없다"
이순신 장군이 호남에 대해서 게 말한 배경에는 밖에서는 적이 안으로 침입할 수도 없고 안에서는 적을 볼 수 있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거북선을 호남출신의 참모(나주출신 나대용)가 직접 설계.제작했고 지형지물에 대한 정보는 물론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정신으로 이순신과 함께 혼연일체로 싸워 주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호남출신의 의병장들은 호남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진주성 등 전국 각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이러한 호남을 아직도 빨갱이 지역이라고 음해매도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아닌 자들로 철저히 응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소인배들과 간신배들이 득세하고 충신을 음해와 누명으로 죽이려 하는 나라는 결국 망하고 만다. 공갈사기꾼이 대통령이 되고 자신의 소신도 순간에 쓰레기통에 버리는 자가 국무총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현재 상황에서 자신과 원칙에 철저하고 왕에게도 할 소리를 서슴치 않고 했던 무당파주의자(국민의 편) 이순신의 인품과 리더쉽은 더욱 필요하다. 나라와 민족이 흥하려면 통치자들과 정치인들이 바로 서야 한다. 이순신은 타고난 인물이 아니라 수 많은 고난과 음해누명을 뒤집어 쓰고도 소신을 버리고 않고 승리한 김대중처럼 수 많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고 뼈를 깎는 아픔으로 극복하여 승리한 사례다.
그럼 이순신의 리더쉽에 대해서 7가지로 구분해서 기술해 본다. 분량상 3가지만 기술하고 다음에 4가지를 기술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리더쉽 개발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순신의 리더쉽(Leadership)
1.전쟁과 분열을 차단하는 평화주의
2.공동체와 질서유지를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