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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법치국가 대한민국...
작금 벌어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자면 이 나라가 과연 법이 있는 나라이고 법치국가가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이명박이 지명하는 공직 후보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범법자들 뿐인지 마치 일부러 그런 자들만 고르고 골라서 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탈세, 논문 이중 게재, 납득하기 어려운 병역면제, 부당 증여 의혹 등등 안걸리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오죽하면 "위장전입은 MB 정권의 기본요금"이란 야당의 논평이 나오겠는가.
공직 후보로 지명되고 청문회를 받게 되면 그제사 잘못을 시인하거나 탈세했던 세금을 디늦게 납부하는 등 부산을 떠는 후보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이 시정잡배나 세간의 장삼이사라면 청문회에서 거론될 이유도 없는 것이고, 국민들이 허탈해 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문제는 그들이 이 나라의 총리, 대법관, 장관 등 주요 공직을 맡을 후보자라는 것과 그들의 범법 사실이 파렴치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번주 내내 청문회가 이어질 예정인 가운데 14일 있었던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민 후보자 역시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 임태희 노동장관 후보, 정운찬 총리 후보와 마찬가지로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이날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민씨는 "위법인 줄 알았지만 아파트를 마련하려는 일념으로 그랬다"고 결국 위법사실을 시인하긴 했지만 구구한 변명과 사유를 댄 점에서는 이전의 청문회 후보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이유없는 위장전입이 있겠는가. 누구나 다 피치못할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고 말한다. 일찍이 이명박이 자녀교육 때문에 그랬다고 말한 바 있고, 김준규 검찰총장도 비슷한 이유를 댔으며, 청문회 전에 미리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한 이귀남 법무 후보자도 역시 비슷한 사유를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것이 이 나라 법률이 금하고 있는 불법행위라는 사실이다. 현행 주민등록법상 위장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는 범죄이다. 법이 처벌의 정도를 규정할 때는 그 범죄의 중대성에 비추어 정하는 게 상식이고 법 논리임은 당연한 얘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주민등록법 위반이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을 필두로 다른 사람도 아닌 법으로 사회질서를 세우고 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위장전입을 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참으로 부끄럽고 해괴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불법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하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천성관이 그랬고 김준규가 그랬으며 민일영이나 이귀남도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선에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이 14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한해만 해도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람이 1504명이고 기소된 사람이 733명이라고 한다. 그들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그냥 넘어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똑같은 법률인데 고위 공직 후보자들은 인정하고 사과하면 별일 아닌 것이 되고 평범한 사람들만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이런 요상한 법치국가가 있단 말인가.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대부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하나 면밀히 따져 공소시효가 아직 지나지 않은 후보자의 경우 응분의 법률적 처벌을 해야 마땅한 것이다. 만약 시효가 지났다면 도덕적인 책임이라도 져야 하지 않겠는가. 도덕적 책임으로는 자진사퇴가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의 "인정하고 사과했으니 별 문제될 것 없다"는 태도는 참으로 국민들을 모독하는 짓이며, 명색이 법치국가라는 대한민국을 수치스럽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이 그렇게 넘어가도 되는 별것 아닌 문제라면 청문회는 무엇하러 하는 것이며, 그따위 있으나마나 한 법률은 무엇하러 존치시키는 것인가.
우리는 김대중 정권 때 두 명의 총리 후보가 위장전입 문제에 걸려 낙마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심재철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요하고 악착같이 후보들을 비난하고 추궁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한나라당이 눈곱만큼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위장 전입이나 기타 불법 혹은 도덕적 의혹을 받고 있는 9.3 개각 공직 후보들에게도 똑같은 태도로 준엄하고 신랄하게 청문회를 해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공직 지명을 받았더라도 스스로 양심과 도덕에 비추어 흠결이 있다면 공직을 사양하거나 후보를 자진사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 정권에서 위법, 비리 투성이인 자들이 후보를 사양하거나 청문회 전에 자진사퇴한 경우를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어정쩡한 변명이나 둘러대기 아니면 마지못한 시인에 사과 한마디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이 나라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불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도 인정하고 사과만 하면 그걸로 끝인 것인가?
"이명박 정권은 흠 없는 사람 좀 내놔 보라"는 야당 대표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국민들도 능력은 둘째 치고(능력이야 어차피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우선 법적, 도덕적으로 한 점 문제없는 깨끗한 후보자 좀 구경해보고 싶다.
지금 세간에는 이명박 정권에서 고위직 한자리쯤 하려면 위장전입 정도는 기본스펙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냉소가 회자되고 있다. 더구나 법률쪽 공직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범법자들이라니... 그들이 그 자리에 임명된다면 무슨 낯짝으로 법을 내세울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게 믿기지도 않고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