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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복록과 자손번영을 가져다 준다는 명당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도 드물것이다. 풍수지리의 핵심은 양택(陽宅)을 뜻하는 집터와 음택(陰宅)즉 묘자리를 길지(吉地) 가운데서도 좋은 자리라고 하는 명당(明堂), 더 이상 좋을곳이 없을만큼 최고 최상의 대명당(大明堂)에 짓거나 쓰는 것이다.
사람들이 명당에 관심이 많은것은 흉터에 집을지어 살거나 묘를 쓰면 사람이 병들거나 흉악한 사고를 당해 죽거나 재산과 명예를 잃는등 패가망신,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지만 좋은터에 집을 짓거나 조상의 묘를 쓰면 큰인물이 태어나 가문을 빛내고 자손이 번성할 수 있는데다 대대로 부귀복록을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즈음처럼 급격한 도시화로 국민다수가 도회지에 모여 살면서 부터는 집터보다는 좋은곳에 묘자리를 잡아 조상을 모시는데 관심이 높다. 물론 협소한 국토공간에 묘지가 너무 많이들어차 자연훼손이 심각하다는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땅값 상승이 원인이 되어 장례문화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보편화되고 납골당에 모시거나 수목장을 치르는등 국민적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조상에 대한 효심,자신과 자식들의 성공,가정의 행복 차원에서 명당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을 모든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명리학상 대통령 사주팔자는 아니었지만 조상의 묘가 명당이라 대통령이 되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상 산소도 대명당이요,전주 모악산에 있는 전주김씨 시조인 김태서공의 묘 또한 천하명당이었던 탓에 후손인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60년 넘게 북한을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느 누구인들 명당에 욕심이 없겠는가.
그러나 명당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게 아니라 3대에 걸쳐 남을 돕거나 희생봉사하는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니 명당 얻기가 쉬운것은 아니다. 명당은 조산과 주산,안산이 잘 갖춰져 있고 좌청룡 우백호가 겹쳐져 있으며 햇볕이 잘들고 통풍이 잘되는 배산임수 지형을 최고로 친다.
흔히 명당하면 용이 하늘로 오르는 비룔승천형이나 봉황이 날아드는 봉황귀소,봉황이나 금닭이 알을 품는 봉황포란,금계포란,호랑이가 뛰쳐나오는 맹호출림, 큰칼 찬 장군이 앉아있는 장군대좌,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매화꽃이 떨어지는 매화낙지,연꽃이 떠있는 연화부수형 등 아주 다양하다.
천하명당 가족묘 대신 국립현충원을 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모원려
지난 8월18일 입원 투병중 서거하여 국장을 거쳐 8월23일 서울 국립 현충원에 안장된 한국 현대 정치사의 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지와 관련해서도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 국민일각에서는 동작동 현충원내 국가원수 묘역에 묘를 쓸 공간이 없고 최규하 전 대통령 부부가 잠들어 있는 대전 국립 현충원에는 자리가 남아 있기는 하나 윤보선 전 대통령이 고향인 아산 선산에 그리고 지난 5월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마을 사저 부근을 안식처로 택한것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용인에 마련된 가족묘로 장지를 택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 하나로 용인에 있는 가족묘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다는 천선하강(天仙下降)형의 천하 대명당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의 부모,본부인,여동생의 묘가 들어서 있는 가족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풍수지리서 '터'를 쓴 육관도사 고(故) 손석우씨가 잡아 주면서 군왕이 나오는 군왕지지의 대명당이라고 했다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묘를 쓰고나서 세번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데다 74세의 고령의 나이였던 김 전 대통령이 결코 쉽지 않았던 97년 제15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하는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용인 김대중 전 대통령 가족묘에는 묘를 몇기 더 쓸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묘터가 남아있는 천하 대명당인 가족묘원을 마다하고 공간이 남아있는 대전 현충원도 아니고 더이상 국가원수의 묘를 쓸 빈공간이 없다는 서울 동작동 현충원을 장지로 택하였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는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소 사이로 1000평이 넘는 박정희 대통령과 500평 규모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에 비해 매우 협소한 80평 규모다. 명당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김 전 대통령의 장조카와 실력있는 지관이 잡았다고 한다. 장례 이튿날 이희호 여사가 밝힌바에 의하면 장례를 국장으로 해달라는건 가족들이었지만 국립 현충원을 안식처로 택한것은 가족들이 결정한것이 아니라 생전에 김 전 대통령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외 민주화 유공자및 대통령없는 현충원
이희호 여사의 말씀이 사실이라는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천하명당인 가족묘 대신 공간이 없다는 국립 현충원에 묻히길 원하였을까. 자세한 내막이야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만이 알겠지만 그 이유를 짐작하는게 어려운것은 아니라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8년 3선개헌 반대 연설에서 박 전 대통령의 이승만 독재,공화당의 자유당화를 예견하였으며 1971년 대선 유세에서는 선거없는 총통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유신독재를 예견하였을뿐 아니라 4대국 안전보장론,남북 교류를 역설하는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바 있다.또한 민주주의와 인권,평화에 대한 신념과 의지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세력의 존재,민주화 운동의 정당성과 자신이 서거한 이후의 정국까지 내다보고 자신의 안식처를 서울 현충원으로 정한게 아닌가 한다. 지금 서울 현충원에는 서거한 국가원수 가운데 묻혀있는 전직 대통령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두분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보수세력들이 건국 대통령이라고 치켜올리고 있지만 반민주 권위주의 독재정치와 친일파를 대거 기용하여 민족정기를 흐렸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발전을 이룬 공적은 인정받고 있지만 불법적 쿠데타로 헌정을 유린하고 3선개헌,반민주 유신독재 정치를 편 독재자로 닮은꼴인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만이 우국선열,호국영령과 함께 자리한다는건 불공평하다고 김 전 대통령은 판단하지 않았나 한다.
사실 독립운동의 상징적 거목 김구선생은 효창공원에 4.19의거 유공자 또한 따로 4.19묘지에, 4.19의거를 촉발시킨 김주열열사는 고향 남원에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박종철,이한열,강경대 열사등 반독재 민주화 유공자들 누구도 현충원에 안장된 예가 없다. 나라의 독립과 국가를 위해 몸바친것과 민주주의를 위해 몸바친 것은 성격상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국민과 국가와 민족을 위했다는 큰틀에서 보면 별 차이가 없는데도 민주화 유공자를 현충원에 안장하는 데는 인색한것 같다.
김 전대통령 묘소 민주수호 구심점 삼아야하고 관리,보호에도 최선 다해야
김 전 대통령은 이러한 점을 바로 잡아 형평성을 맞추고 민주화와 남북평화에 헌신한 자신이 박정희,이승만 사이게 당당하게 자리잡음으로써 민주세력의 존재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정당성을 지켜주고자 하는뜻이 있었지 않는가 하는것이다. 또 민주주의 수호는 민주진영이 존재할때 가능한 것이고 민주진영이 그러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려면 대단합이 필요하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서거전까지 범민주 세력의 대단합을 호소한데서도 현충원을 고집한 심모원려를 살펴 볼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서거후 민주개혁세력이 분열되어 망하는 길로 가는걸 막기위해 접근성이 좋은 현충원에 상징적이나마 자리잡아 범민주 진영의 정신적인 보루가 되어주고 결속과 투쟁 전의를 불태우는 장소로 제공하기 위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사사롭게는 자신을 빨갱이,보수의 적,반역자로 매도하는 극단적인 사이비 극보수 싸이코 집단으로 부터 봉분이 위해를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묘터가 좋다고는 하나 지키는 사람없는 산속 가족묘 보다 경비인력이 관리하는 현충원이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