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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면 소재지를 가면 대로변에 지서라는 게 있었다. 거기에는 낯선 복장의 순사들이 있었다. 저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어릴 적에 아이들이 울면 엄마들이 “순사온다!”고 아이를 어르곤 했다. 아이들은 순사가 무언지도 모르면서 ‘순사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인가 보다’라고 지리 짐작하고 울음을 뚝 그치곤 했다.
왜 우리들의 엄마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순사라고 어릴 적부터 가르쳤을까? 이는 아마도 일제치하의 아픈 기억 탓일 거라고 생각한다. 일제치하의 순사는 일제에 충성하면서 조선인 수탈에 앞장 선 매국노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선조들에게 그들이 가장 경원시 되었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어린 시절엔 동네마다 주먹들이 있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아주 무서운 형들이었다. 그 당시는 그들끼리 싸움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순사들이 와서 그들을 잡아가곤 했다. ‘그 무서운 형들을 잡아가다니? 순사는 참으로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민중의 지팡이이고 사회를 지키는 파수꾼인 경찰들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이렇게 부정적으로 형성된 데는 꼭 우리의 잠재적인 순사 무섬증 때문만은 아니다. 해방 이후 역대정권에서 경찰들이 과연 사회를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했던가, 아니면 정권의 경비견 노릇을 했던가?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경찰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최루탄과 방패, 그리고 곤봉이 난무하던 군사독재 시절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는 최루탄 제조회사 사장이 전국 소득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교적 민주화가 진행된 문민의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서는 경찰이 본연의 자세를 찾는 듯했다. 포돌이 마크도 새로 만들고 국민들에게 다가는 경찰, 국민들을 보호하는 경찰상을 심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상기한 최루탄 제조회사가 부도를 맞는 일도 있었다. 시위 진압과정에서 간혹 불상사가 있었던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사회변화 과정의 아픔이라고 생각하며 희생자들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엠비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전두환 공안정국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강경진압이 광화문 앞의 ‘명박산성’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제 경찰은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 경찰이 아니라 오직 정권의 시녀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는 전국의 모든 경찰들 탓이 아니다. 해바라기처럼 엠비만을 쳐다보면서 출세욕구에 눈이 먼 한나라당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일부 경찰 상층부의정치경찰들 때문에 전체 경찰들이 욕을 먹고 있다. 경찰은 상명하복의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명을 받는 경찰들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따름이다. 경찰이나 경찰의 단속을 받는 국민들이나 어찌 보면 모두 피해자들인 셈이다.
지금 부산 영도의 한진 중공업은 수많은 경찰들의 포위를 받고 있다 한다. 무려 2,000명에 달하는 경찰병력이 거기서 썩고 있다 한다. 국가를 전복할 정도의 거대 세력이라도 암약하고 있어서 그렇게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고 있는가?
아니다. 그들은 어제 생일을 맞아 이제 만 51살이 된 김진숙이란 여성 한 명을 대병력으로 포위하고 있다. 왜냐고? 물론 위에서 그리하라고 시켜서일 것이다.
김진숙은 국가 전복을 꾀하는 반역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 강도, 방화와 같은 극악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녀는 다만 한진 중공업에 의한 ‘부당 해고자 174명에 대한 해고를 취소’하여 이들에게 생존권을 돌려 달라며 한진 중공업의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가 일인시위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는 한 개인의 한 회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일 따름이다. 극히 사적인 영역의 이야기일 뿐, 경찰 대병력이 출동할 성격이 전혀 아니다. 회사 측에서 요청한다면 사복경찰 한명 쯤 상주시켜 시위자의 동행을 파악하고, 시위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족하다.
김진숙씨의 죄가 있다면 한진 중공업 85호 크레인(사유재산)을 불법점거한 죄밖에 없다. 시위가 허가받지 않은 불법이라면 그 죄도 추가하자. 더 이상 무슨 죄가 있는지 엠비정권에게 묻고 싶을 따름이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대기업, 재벌들, 가진 자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엠비정권에 대해 김진숙씨가 ‘노동자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고 정식으로 항의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이 이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 국민들, 특히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예속된 존재로 스스로를 격하시켜 고용주 측의 어떠한 불편, 부당한 대우에도 그저 입을 다문 채 이를 감수해 왔다. 고용주에 반기를 들어 이를 항의하는 일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정부나, 기득권층에 대한 항의를 하는 것이, 인권, 노동권을 주장하는 일이 빨갱이들이 하는 일이라면 그 빨갱이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기업주들에 의한 부당 해고에 대해 침묵하는 다수를 향해 김진숙씨는 홀로 의연히 저 높은 한진 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스마트폰을 높이 쳐들고 외치고 있다.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 노동자들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달라.”
그녀의 외침은 이제까지 밑바닥에서 침묵하던 국민들의 인권에 대한 목마름을 대변하는 것이다. 더 이상 당신들의 노예이기를 거부한다. 우리에게 노동권을 돌려 달라. 부당한 해고는 법으로 금지된 행위이다. 위법한 행위에 대해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시위자를 범법자로 몰아 탄압하는 정권은 과연 누구의 정부이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비록 눈먼 국민이 뽑았을지언정, 국민을 위해 달라고 뽑은 것이 아니던가? 이제 국민의 손으로 뽑아 놓은 정권이 국민을 향해 불법적인 폭력을 휘두른다면 국민은 어찌해야 하는가?
김진숙씨와 그의 저서 ‘소금꽃’에 관한 글을 읽다 보니 너무나 가슴에 사무쳐 일부만 게재한다.
내가 언제 처음으로 김진숙에 대해서 알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난 처음부터 그이를 그냥 내 친구려니 여기며 살아왔다. 그냥 우리가 비슷한 연배라는 사실에 난 눈물이 났다. 그이가 “일 주일동안 곱배기 철야를 하고나면 미싱바늘이 지 손가락을 박는 줄도” 모르는 열여덟 살을 보내고, “하루 스무 시간을 넘게 일하고 나서 밤이면 옷을 홀딱 벗긴 채 알몸으로 검신을 당”하는 열아홉을 보내는 동안 나는 시험성적을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사색하던 여학생이었다.
내가 건축과 실습 과정에서 남학생들 틈에 끼어서 재떨이를 용접하느라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그이는 수십 미터 높이를 자기 몸 무게만큼 무거운 작업공구를 들고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타거나 또는 유해가스가 자욱히 깔려 발끝이 보이지 않는 탱크 안에서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얼굴에 불똥을 뒤집어쓰는 직업 용접공이었고, 그 후 내가 남자 동료들과 경쟁하며 여성의 위상을 지키느라 악착을 떠는 동안 그이는 노동자의 인권을 주장하다가 빨갱이로 몰려 고문도 받고 감옥에도 가고 그랬다.
중학생 시절에는 조카를 ‘궁뎅이’에 치렁치렁 매달고 등교해서아기를 철봉대에 기저귀기로 묶어놓고 교실에 들어갔다가 노는 시간에는 남이 볼까 부끄러워 차마 나와보지 못하고 공부시간에 화장실에 간다며 살짝 빠져나와 보러 가면, 아기는 온몸에 똥칠을 하고도 그래도 아는 얼굴이 왔다고 모래가 가득 든 입을 벌려 벌쭉벌쭉 웃었다고 한다. 남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에 공장에서 툭하면 따귀를 얻어맞고 쌍욕을 들어가며 철야노동을 했던 그이가 만약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면 아마 나보다는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다 거기서 거길 거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둘의 인생이 처음부터 이렇게 갈리는 것을 팔자소관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생을 경박하게 사는 사람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이 이렇게 갈리는 것을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뜻, 불의라는 뜻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