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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반도사관의 목적
1925년 6월 칙령 제218호로 공포한 일본제국주의 조선총독 직할기관<조선사 편수회>의 목적은 단군3조선의 붕괴로 인하여 북방의 진.번조선 유민들의 대거 이주와 한반도지역의 패권쟁탈전으로 인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대거 이주한 고대 한반도들을 조상으로 삼아야 하는
일본인들의 역사적 갈등을 감추고 조선인들에 민족적 열등감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조선민족은 열등한 민족으로 세뇌시켜 일본의 통치를 합리화하는데 있었다. 그리고,8·15해방 직전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촉탁으로 활동한 이병도는 8.15이후 경성제국대의 후신인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국 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수 많은 이병도 제자들에 의해 조선인들의 역사는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반도사관을 그 특징으로 삼는 일제 식민사관이 한국사학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반도사관에 대해 단재 신채호 선생 등 민족사학자들의 논리로 무장된 재야 사학자들이 '민족사학'이라는 이름으로 반박논리로 저항하였고,
중국의 갑골문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단국대 윤내현 교수같은 제도권 교수들이 이병자 제자들의 박해와 음해를 받으면서도 단군조선은 한반도를 포함한 만주지역까지 포괄한다는 내용의 논리적인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일제 식민사관도 점점 힘을 잃게 되었다.
현재 중국과 일본과 한국은 역사전쟁 중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하여 요서지역의 고대 한국문명인 요하문명을 중국화하여 중국과 한반도문화가 모두 중국문명에서 나왔기 때문에 단군조선뿐만 아니라, 한반도북부까지 지배한 고구려도 중국역사에 속하고 결국 한반도북부(북한)도 중국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영토지배논리를 펴기 위함이다. 그래서 여신전.옥.뱀.빗살무뇌토기.곰토템.원형제단.적석총(피라미드) 등 요하문명의 뿌리가 백두산문화에서 나왔고, 백두산문화는 결국 고고학적으로도 1만년을 전후로 현인류문명의 근원이 되는 마고문명의 중심지(서해)에서 가까운 한반도문화에서 나왔다는 역사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세계적인 유물.유적의 시원지(고인돌.토기.볍씨.선박.옥.곰토템 등 세계최초 최대 유적유물)가 되는 한반도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대한민국차원의 서북공정의 역사논리를 전개시켜야 중국의 동북공정이 고꾸라지게 되어 있다.
중국문명의 뿌리가 결국 한반도문명에서 출발한다는 사실만 증명해 주면 마고문명을 계승한 한반도 문명의 가지들에 불과한 중국문명은 결국 한반도문명에 고개를 숙여야 하기 때문이다.
▲ 백제 대향로 위의 봉황 -봉황는 고대 한반도인들의 신조(천상의 새). [산해경]"동방의 봉황이 사해를 날면 평화가 실현되었다"
역사연구와 인식론
사람들은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인류의 뿌리, 그리고 자신들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심리적인 배경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역사학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결국 자기울타리에 머문 국수주의적인 차원에서 전쟁과 대립을 부추켜 인류평화를 깨트리고 학살과 전쟁의 악순환을 지속시키는데 있지 않다.
객관적인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세계가 갈라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지평융합의 세계임을 인식하고 현인류조상과 현인류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공존공영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데 있다고 본다. 한국의 예언자 함석헌 선생이 "인류가 역사의 줄기를 통하여 하나의 신과 하나의 조상을 찾아서 오손도손 찾아야 한다"라고 호소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럼 역사학의 방법론은 무엇일까? 그것은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쪼개진 퍼즐을 맞추어 모양을 만드는 진실탐구에 있다. 따라서 종합적인 분석을 전제로 하는 인식론이 아니라, 한쪽으로 기울려진 편향된 인식론으로 역사의 진실이 밝힐 수 없으며 역사학을 할 자격이 없다. 예컨대, 한 사건에 대한 여러 문헌들의 기록들을 비교분석해서 공통적 내용에 해당하는 교집합을 찾을 줄 알아야 하고, 땅 속에서 출토된 유물유적을 통하여 문헌들의 공통적 기록내용의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각 문헌들의 공통적 기록내용은 고고학적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대한 역사적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공통적인 내용이란 사건의 사실을 사가들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문헌들의 경우 후대로 내려 갈수록 고대 한국인들의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감추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높이고 확대하는'춘추필법'으로 기록하였다. 예컨대, 태호복희는 백두산지역의 신시배달국 태우의 한웅의 막내 아드님인데, 중국에서는 추상적인 신화로 기록하여 중국의 인문학의 시조로 추앙하고 있다. 태호복희는 산동에 묻혔는데, 중국문헌들은 출생지와 장지가 불분명하고 여러 군데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중국문헌들은 황제헌원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진시황과 유방은 전쟁에 출전할 때 전쟁신 치우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황제헌원이 승리했다면 진시황과 유방은 치우가 아니라 황제헌원에게 제사를 지내야 상식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지배한 고대에서 영어구조와 동일한 남방계 언어를 사용하며 중동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하여 황하강 중상류에 거부하여 동이족들을 복속해 나간 화하족들은 후대로 갈수록 이러한 춘추필법으로 중국지역의 '동이사'를 감추고 왜곡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 동북공정론자들과 식민사관론자들에 의해 위서로 취급하고 있는 [한단고기:고대 한민족 역사를 기록한 고대 사서들을 묶은 책]는 신화적 기법을 배제하고 아주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기록으로 우리 민족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고고학적으로 객관성을 지니고 있는 사서로 증명되고 있다. 예컨대, 단군조선의 영역자체가 고인돌.비파청동검과 세형청동검 출토지역을 기준으로 [한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는 단군3조선의 영역으로 산동.요서.만주.몽골.연해주.한반도.일본열도임이 증명되었다. [조선왕조실록]를 보더라도 세조3년에 전국 8도 관찰사들에게 고서들을 수집해서 중앙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린 기록이 있는데, 그 고서들 중에[한단고기]에 포함된 <삼성기>라는 고서도 보이기 때문에 계연수 선생이 근대적인 용어로 해석을 했다 치더라도 그 원내용은 그대로 기록한 책이 [한단고기]이며,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기록내용을 담고 있는 [한단고기]는 기자.위만.한4군 문제 등 중국문헌이 왜곡하고 있는 고대사의 논쟁거리에 대한 혼란을 말끔히 해소해 주고 있다.
▲현도군.임둔군.진번군.낙랑군은 기자조선(번조선)의 제후국들이다. 기자조선을 빼앗은 위만조선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위만조선의 내분(기자조선세력과 위만세력과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위만의 손자 우거왕이 암살되자 한무제(유철)이 위만조선을 공격해 들어 왔으나, 북부여 고두막군대와 위만조선유민들이 연합하여 격퇴시켰기 때문에 한나라가 설치했다는 한4군은 허상에 불과한 날조다. 소위,한4군의 지명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