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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먹구렁이,황구렁이,능구렁이
요즈음엔 구렁이가 나타나면 뉴스거리가 된다. 구렁이의 사진과 함께 발견된 경위와 처리결과가 자세하게 신문에 보도된다. 이처럼 구렁이 출현이 화제가 되고 언론이 관심을 갖게 된것은 여간해서는 구렁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구렁이가 우리 주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건 초가지붕을 슬레이트,기와지붕으로 개량하고 마을 골목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1970년 새마을 운동 사업이 추진된 이후 부터다.
물론 경제발전으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뱀탕이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자 땅꾼으로 불리는 뱀잡이들이 전국을 뒤져 뱀을 잡고 산밑을 빙둘러 그물을 쳐 겨울잠을 자기위해 산을 오르는 뱀을 일망타진식으로 잡아들인 것도 구렁이가 사라진 원인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뱀탕이 인기를 끌고 땅꾼이 기승을 부린 이후에도 살모사,까치독사,꽃뱀,물뱀등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구렁이 만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구렁이는 크게 세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먹구렁이와 황구렁이,그리고 능구렁이다. 먹구렁이와 황구렁이는 몸통길이가 2미터가 넘고 몸통이 매우 굵다. 우리나라 고유의 뱀종류중 가장 큰 뱀이다. 먹구렁이는 몸 전체가 검은색이고 황구렁이는 누런빛을 띤다. 능구렁이는 일반 뱀보다는 크지만 먹구렁이와 황구렁이보다 작고 전체적으로 분홍색깔을 띠며 검은 줄무늬가 있다.
가정과 마을의 수호신이었던 구렁이
능구렁이는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직도 시골마을 주변에서 간혹 눈에 띤다. 그러나 먹구렁이와 황구렁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멸종되지 않았나 할 정도로 보기가 힘들다. 이처럼 보기 힘든 황구렁이와 먹구렁이가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이전에는 마을골목,집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어떤때는 골이 깊게 패인 초가지붕을 기어 다니고 서까래에 붙어있는 경우도 있었고 부엌 또는 마루밑과 도장이라고 불렀던 살림방 그리고 광이라고 칭하였던 창고,헛간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사람을 놀래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마을 골목이나 담을 타고 다니는 구렁이를 사내 아이들이 때려잡아 끌고 다니거나 작대기끝에 걸어 여자아이들을 놀리다 도랑가에 버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어른들은 구렁이를 신령한 생물이라며 죽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의료시설이 낙후된데다 특효약이 개발되지 않아 걸렸다 하면 오랜기간 동안 피를 토하는 투병끝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폐결핵 환자들이 몸에 좋다며 뱀을 잡아 먹을때 약효가 없다고 알려진 황구렁이에 비해 약효가 뛰어나다는 먹구렁이를 잡아 고아 먹는 경우는 있었다.또 구걸하러 다니던 걸인들이 아이들이 죽여놓은 구렁이나 지나가다 눈에 띠는 구렁이를 잡아 다리밑에 불을 피워놓고 구워먹는 일은 있었지만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구렁이를 죽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집안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구렁이는 집안의 재산을 지켜주고 재물을 가져다 주는 '업'이라며 귀하게 여기고 정성을 다해 보호했다. 업이 사라지면 재물이 나간다며 제발 집안에 남아있어 달라며 구렁이 앞에 물을 떠다놓고 손을 비비기까지 하였다.
새마을 사업으로 사라진 구렁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들이나 산보다 구렁이가 마을에 흔하였던 것은 먹잇감이었던 쥐가 많고 특히 몇집을 제외하고 수십,수백년된 골이 패인 썩은 초가지붕속과 퇴비,두엄더미속에 굼벵이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마을 골목이 흙으로 되어 구렁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부족함이 없었던것도 그렇다. 특히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마을사람들이 집안과 마을에 부귀복락을 가져다 주는 업이요,마을의 수호신으로 신성시하며 보호했던 점도 구렁이들이 안심하고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게 아닌가 한다.
먹구렁이와 황구렁이에 비해 능구렁이는 뱀술용으로 인기가 있어 수난을 당한편이다. 능구렁이 가운데서도 두꺼비를 잡아먹어 배가 불룩한게 약효가 높다고 알려져 배가 불룩한 능구렁이는 사람눈에 띄이는 그시각이 뱀술용으로 생을 마감하는 제삿날이 되었다. 지금은 소주를 두홉짜리 작은병으로 팔고 됫병으로 팔지 않지만 당시에는 두홉짜리,네홉짜리는 물론 한되짜리 큰병에 소주를 넣어 팔았다.
능구렁이를 잡으면 됫병 소주병에 거꾸로 집어넣고 소주를 부어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촛농을 떨어뜨려가며 단단히 밀봉하여 일년쯤 보관해 두었다가 누런빛을 띨 정도로 익으면 마을사람들을 불러 한잔씩 나누어 먹거나 마루옆 벽장속에 넣어두고 생각나면 간장종지잔으로 한잔씩 따루어 먹곤했다.이처럼 뱀술로 이용할만큼 흔하였던 능구렁이도 이제는 보기 어렵다.
호박넝쿨이 뒤덮은 돌담을 타고 초가지붕위를 기던 먹구렁이,황구렁이는 새마을 사업으로 초가지붕이 없어지고 골목이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되면서 먹거리가 되었던 쥐,굼벵이가 사라지는등 생존환경이 바뀌자 어느날 갑자기 신기루처럼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비록 보기엔 징그럽기는 하지만 지난날 함께했던 먹구렁이와 황구렁이가 다시금 집안의 업이자 마을의 수호신으로 돌아 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