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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조찬모임이라는 데를 다녀왔다. 지난번 말한 ‘민주주의의 친구들’이라는 단체에서 출범식을 겸해서 제1회 포럼을 열었는데 하필이면 그 행사가 아침 7시 30분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점심먹고 사무실 소파에서 30분 정도 낮잠을 자버렸다. 보편적 복지 외치는 분들은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오수를 즐길 권리도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행사에서는 민주당 김영춘 최고위원을 ‘민친’의 공식 대표로 선출하였다. 김영춘 씨의 정확한 속내야 알 수가 없으나, 나를 만나면 인상 찌푸리는 인물은 아니니 나도 명색이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축하의 박수를 쳐줬다. 툭 까놓고 말해서 자기한테 호감 보여주는 사람에게 도리어 성내고 눈알 부라려야만 뭔가 지조 있으면서도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이 인식하는, 결벽증 비슷한 사고가 우리 사회에는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를 양심적인 일도, 지조 있는 처사도 아니라고 본다. 단지 성격파탄의 징후로 여길 뿐이다.
포럼에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참석해 축사를 했는데 정치적으로 특별한 내용은 없었으므로 통과하기로 하겠다. 그렇지만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고성국 박사의 발제는 매우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내가 그의 논지를 주의 깊게 귀에 담아온 까닭은 저번에 거론한 동국대 김준석 교수의 한겨레신문 칼럼을 치하했던 이유와 동일하다. 진보적이지도, 수준이 높지도 않았지만 지극히 정상적 견해를 고성국 씨는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압권은 이 대목이었다. 그가 어느 토론회를 나갔는데 보수 논객이 지금 이뤄지고 있는 형태의 야권연합이 애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주장을 했단다. 그래서 고성국 씨는 토론의 규칙을 어겨가면서까지 상대편을 밟아주었다나. 문제는 고 박사 본인의 허풍 섞인 자랑과는 달리 현존하는 야권연합의 형태와 방법이 애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보수진영 패널의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에 있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백낙청 교수가 ‘MB 이후의 큰 그림을 그리자’는 글을 특별기고 형식으로 한겨레신문에 올렸다. 고성국 박사의 얘기를 듣고서 나는 현재의 백낙청 씨에 대한 평가를 보다 명쾌하게 내릴 수가 있었다. 애들 교육에 안 좋은 이야기를 엄청 어렵게 풀어놓는 양반이라고. 어쩌면 그것도 재주면 재주고, 내공이라면 내공이겠다. 백낙청 씨처럼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은 소리를 현학적으로 들려주는 기술, 나도 날 잡아서 제대로 연습해봐야지.
결국은 다른 정당들 사이의 ‘묻지 마식’ 후보 단일화 논의로 귀결될게 명백한 지금의 야권 연대를 둘러싼 논의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말들이 점점 길고 어려워지는 현상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으리라. 시간 되시는 분들은 백 교수의 기고문을 한번 읽어보시라. 대신에 머리에 쥐날 각오하고서 말이다.
말이 짧아짐은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격앙되고 있다는 뜻이다. 말이 복잡하고 장황해진다는 것은 말하는 당사자가 어딘가 켕기는 구석이 많다는 증거다. 빅 텐트니, 단일정당이니, 백만 송이니 떠들어대는 제씨들에게 진지하게 묻는 바이다. 댁들이 하는 짓거리가 애들 교육에 좋다고 생각하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하기 바란다.
고성국 박사의 발제를 시발점으로 삼아 행사에서는 분당에서의 극적 승리를 발판으로 하여 당장 대폭발할 듯했던 손학규 씨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왜 15퍼센트 언저리에서 또다시 주저앉았는지에 관한 열띤 담론들이 오갔다. 나도 한번 마이크를 잡아볼까 고민하다가 당분간 튀는 행동은 자제해야겠다는 결심에 따라 그냥 얌전히 입 다물고 구경만 했다. 주화입마 조심해야지.
정답은 항상 가깝고 찾기 쉬운 곳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손학규 씨의 지지도는 15퍼센트다. 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30프로다. 즉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손학규 씨를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 가까기가 그를 밀지 않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별로 놀랍지 않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이나 손학규를 지지하는 현실이 오히려 놀랍다.
손학규 씨의 심복으로 언론에 간간이 보도되곤 하는 선배 한 명이 당선 메시지를 어떻게 구성하면 좋겠느냐고 분당을 보궐선거가 끝날 때쯤 나한테 조용히 물어 와서 이렇게 일러준 적이 있다. 당과 당원에 무척 감사하고 있음을 반드시 언급하라고. 당색을 감추고 불가피하게 선거운동을 해야만 했던 자신 때문에 여러모로 속이 쓰리고 가슴이 아팠을, 한마디로 자존심이 상했을 민주당원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비록 완곡하게나마 심심한 사과의 의사를 전달하라고. 그리고 요 부분을 언급하는 과정에 이르러서는 꼭 목이 메어야 한다고. 눈시울마저 덩달아 붉어지면 금상첨화고.
그런데 승리가 확정된 직후의 일성에서 손학규 대표는 내 기억으로는 민주당을 거의 한 차례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분당을 지역구의 유권자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표현했으되, 민주당원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가 그 기회를 빌려서 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과의 무언의 교감, 시쳇말로 이신전심을 짧고 굵게 꾀했다면 마의 15프로의 박스권에 다시금 갇히지는 않았을 게다. 그로 말미암아 분당에서의 값지고 감동적 도전은 작년 가을의 전당대회에서 거뒀던 이른바 컨벤션 효과를 뛰어넘는 약발은 발휘하지 못한 셈이 되고 말았다.
손학규 씨가 국회의원 당선 일성에서 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과감하게 표시했다면 그의 지지율은 15퍼센트의 한계범위에조차 도달하지 못했을 위험성도 물론 배제할 수는 없었다. 허나 명심하자. 우리나라가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등의 이슬람권 국가들처럼 극단적으로 분열되지 않는 한에는 15퍼센트 안팎의 지지율만을 가지고서는 그 누구도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메쳐서 15프로나, 업어 쳐서 7.5퍼센트나 대권과는 거리가 멀기는 매한가지인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성국 박사의 지적대로 손학규 씨에게는 지지율을 배가시킬 수 있는 몇 번의 기회와 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거다. 이제 그는 남은 기회와 계기들을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진실한 존경의 마음을 전하는 데 적지 않게 바쳐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그가 마의 15프로 벽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나는 믿는다. 한데 손 대표 주변의 측근과 참모들 사이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충성심(Loyalty)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게 나는 답답하고 안타깝다. 생각해보면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할 노릇은 없겠지만…. 당신들이 정권 못 잡지, 내가 못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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