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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털사이트들에서 요즘 유행하는 익살맞은 댓글이 있어 소개해볼까 한다. “이명박은 안 해본 게 없고, 박근혜는 해본 게 없다.”는 내용의 글이다. 안 해본 게 없음에도 잘하는 건 하나도 없는 이명박 대통령과, 해본 게 없음에도 아무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서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비꼬려는 목적이 담긴 듯싶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경험치의 측면에서 아마도 MB와 박근혜 씨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민들이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일을 차례대로 꼽아보도록 하자. 나는 그 상위권에 분명 단수사태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렇다. 현대 도시문명에서 수돗물 안 나오면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지고 만다. 당연히 압권은 급수가 끊긴 수세식 화장실일 테고. 오물로 꽉 찬 양변기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조금 전에 사먹은 김치찌개가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기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통명사처럼 그냥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도시인 경상북도 구미가 지금 그와 같은 목불인견의 꼴을 무려 5일째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구미에 사상 최악의 수돗물 단수사태를 가져온 원인은 이명박 정권이 거의 신앙 차원에서 강행하고 있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 공사’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 대통령은 4대강을 살리고픈 마음이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1인분의 분뇨라도 더 줄이고 싶었던 것일까? 40만 명의 구미시민이 며칠 동안 잘 참아준 덕분에 조금은 맑아졌을 낙동강 수질을 생각하니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역시 이명박이다. ‘나는 대통령이다!’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혹여 방송전파를 타게 된다면 나는 방송사의 청중평가단 모집 응모에 신청할 작정이다. 무조건 이명박 찍으려고. 우리나라 역사상 이명박 대통령만큼 실질적으로 강물 정화에 이바지한 통치자는 없었다. 그러므로 구미시민들께서는 좀 불편하더라도 며칠만 더 용변을 제각기 알아서 해결해주시기 바란다.
2. 남들이 치르고 있을 지독한 곤욕을 내가 이토록 희희낙락하는 기분으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까닭은 모두들 넉넉히 짐작했고 있을 터. 구미시민들을 아수라장에 빠뜨린 장시간의 수돗물 공급 중단이 솔직히 나는 별로 안타깝지 않다. 대신에 쌤통이라는 생각만은 제발 들지 않게끔 내 자신의 심보를 힘겹게 다스리고 있는 중이다. 내가 남들이 고생하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디즘에 깊이 중독된 탓이라 그런 걸까?
천만에. 문제의 본질은 구미의 단수사태가 자업자득 성격이 짙다는 점에 있다. 현 정권이 무슨 변명을 둘러대든 그곳의 장시간 단수가 무리한 4대강 공사로 말미암아 야기되었음은 대한민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역에 따라 다소의 편차는 있겠으나 4대강 공사에 대한 찬성 여론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역에서 압도적으로 높았음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얄팍한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자신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지지해준 공사로 인해 단수가 됐으면 구미시민들은 고통과 불편함을 호소하기 이전에 부끄러움부터 통감해야 소위 ‘깨어 있는 시민’에 어울리는 태도일 게다.
허나 우리가 기존에 숱하게 목격해온 대로, 충분히 예상한 바와 같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맹목적으로 밀어준 데 대한 자성의 움직임이 구미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후문은 좀체 들리지 않는다. 보도되는 뉴스라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종류의 소식들이 전부다. 자기들 손으로 뽑아놓은 정부에 자기들 손으로 손해배상 청구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자가당착이자 이율배반이다.
3. 내가 가끔씩 구경 가는 웹사이트 가운데 하나가 ‘민주주의의 친구들(약칭 민친)’의 공식 홈페이지다. 이곳 자유게시판에서 ‘초록지평’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네티즌의 주장을 접하고 나는 구미시민들이 보여주는 자가당착과 이율배반은 앞으로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거란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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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엄중한 시국상황을 고려하면 약간은 무책임한 결정으로 여겨질 만큼, 교환교수 자격을 내세워 1년 동안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가 한창 필력이 물이 올랐을 적에 했던 얘기에 나는 여전히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성역과 금기가 온존하는 나라에서는 어떠한 효과적 사회개혁도 이룰 수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최후의 성역과 금기는 바로 국민이라고 말했다. 또는 말했던 것 같다.
강 교수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최후의 성역과 금기로 염두에 둔 국민은 다름 아닌 경상도 유권자들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초록지평과 같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중차대한 모순은 그들이 박정희와 전두환은 비판하되, 박정희와 전두환을 광신적으로 열화와 같이 지지해준 다수의 국민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도적이건, 의도적이지 않건 철저히 눈을 감는다는 거다.
물론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을 열렬히 지지했던, 현재는 이명박과 박근혜를 차례로 열렬히 지지하는 영남 유권자들이 군부독재와 한나라당을 탄생시킨 원인제공자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냉정히 따져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영남주민의 응원과 뒷받침을 받지 않았다면 군사정권이 30년간이나 집권할 수 있었을까? IMF 외환위기를 불러와 국가경제를 거덜 낸 한나라당이 환란이 발생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정권탈환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지난 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현실정치에 있어서의 최고의 윤리적 미덕은 ‘책임윤리’에 있음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독재정치보다도 더 나쁜 최악의 정치는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의 정치란 지적이었다. 본인들이 선택한 결과를 절대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유권자들이야말로 책임윤리를 방기한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좋은 먹잇감이자 이상적인 공범자인 셈이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하나마나한 영양가 없는 덕담은 이제는 그만 접어치우자. 반세기가 넘도록 열심히 일궈도 파 한 단의 소출조차 건질 수 없다면 그건 밭 자체에 하자가 있다는 증거다. 더군다나 그 밭에서는 유용한 농작물들은 잘 자라지 않되 마약의 원료로 쓰이는 양귀비만 저절로 무성하게 성장한다면 그 밭은 이미 볼 장 다 본 밭이다.
육군소장 박정희가 주동한 5ㆍ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지가 올해로 만 50년째다. 그동안 영남은 정말 심하다고 할 정도로 많이 챙겨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산업시설들도 죄다 경상도에 들어섰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중앙무대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출세한 인물들도 주류는 경상도 출신이다. 동남권 신공항 사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재심의 파문, LH 한국토지주택공사 진주 독식 등도 영남패권주의가 낳은 경상도 ‘몰빵’의 물증들이다.
진보를 표방한 세력 또한 행태가 다르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스스로를 ‘부산정권’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애당초 제주도에서 치러질 예정이던 APEC 정상회담을 부산으로 빼앗아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최근엔 강남좌파라는 사기성 짙은 그럴싸한 ‘신수종사업’을 벌이며 진보의 영역마저 경상도 태생 엘리트들이 싹쓸이하려는 형국이다.
나는 초록지평의 요구를 받들어 야권의 젊은 정치인들이 영남지방에 몸을 던질 수도 있다고 본다. 단, 한 가지 단서를 붙인다면. 초록지평이 지칭하는 젊은 정치인들은 물리적 나이가 어린, 즉 몸만 새파랗게 젊은 정치인들이라고. 반면에 정신과 영혼이 팔팔하게 젊은 정치인들은 영남의 지독하고 강고한 지역패권주의를 겨냥해 돌을 던져야 마땅할 것이다. 모름지기 세상은 신체적 연령이 아니라 마음의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 주도해야 참다운 진보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럴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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