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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대표가 어느 날 갑자기 대표직을 내던졌다.
그는 지난 9일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우리 당과 정체성을 같이하고 우리 당 출범 시에 손을 잡았던 세력들이 다시 한 번 결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와 무소속 이인제 의원 등이 당에 들어오는 데 자신과의 ‘악연’이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심 대표와 이 의원을 복당시키기 위해 대표직을 내던진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이 대표가 정치 전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더 큰 그림을 위해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리는 ‘더 큰 그림’이란 무엇일까?
바로 그가 늘 주장해 왔던 ‘보수대합’이다.
즉 충청권 기반에 얽매인 지역당의 한계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말이다.
물론 이 전 대표는 “나의 사퇴가 보수대연합과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보수대연합 시나리오로 일단 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 및 이인제 의원이 재결합한 뒤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한나라당과 합당 또는 후보단일화 같은 선거연대를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선진당과 한나라당 연대에 이재오 특임장관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이재오 장관의 핵심 측근은 <시민일보> 기자에게 “보수대연합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회창 전 대표와 이재오 특임 장관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선진당과 이재오계가 ‘연합’을 한다면, 그 촉매제가 무엇일까?
서로 구미를 당기는 그 무엇인가가 있지 않고서는 선진당과 이재오계가 ‘연합’을 추진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과연 그런 촉매제가 있을까?
있다.
바로 ‘개헌’이다.
이재오계는 지난 6일 한나라당 경선에서 안경률 의원이 패배한 것을 계기로 자신들의 한계를 분명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 장관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고, 그게 바로 ‘분권형 개헌’을 매개로 한 ‘보수대연합’일지도 모른다.
즉 분권을 전제로 이회창 전 대표와 이재오 장관이 각각 대통령과 총리 후보로 역할을 나누는 형식의 연합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미 친이계는 개헌논의 특별기구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2월 8~9일 열린 개헌 의원총회에서는 ‘벌떼 작전’으로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한 바 있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대리인 격인 이 장관을 앞세워 과거 YS의 ‘3당합당’처럼 한나라당과 선진당 및 민주당 분권형 개헌 찬성론자들이 함께 하는 ‘신3당합당’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시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3당합당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보수대연합이라는 이름의 ‘3당 합당’을 모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어차피 친이계와 박근혜 전 대표는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이재오 장관은 더욱 그렇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도 실패한 이명박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버려야할 ‘과거’일뿐이다.
그렇다면 ‘개헌’을 매개로 한 보수대연합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친이계는 선진당이 개헌안에 적극 찬성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 등 보수야권 세력이 합세한다면 개헌 정족수 3분의2는 너끈히 채울 수 있고, 이를 명분으로 보수대연합까지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개헌’을 매개로 한 보수대연합이 결국 ‘박근혜 죽이기’라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우선 MB 레임덕이 가속화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나라당 내부에서 ‘박근혜 죽이기’에 동의할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한나라당 지지율을 넘어서고 있는 만큼, 민주당에서 나와 ‘보수대연합’에 동승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면에서 이회창-이재오 및 민주당 일부가 손잡는 보수대연합의 밑그림은 ‘한 여름 밤의 꿈’으로 막을 내릴 것 같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