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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중앙우체국으로 우리 우체국에 익스프레스 메일(이건 아침에 배달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배달해 줘야 합니다. 열 두시 전까지는 반드시 배달해야죠) 들을 배송하러 온 담당자가 우리 우체국으로 들어와 휴게실로 들어가더니 우체국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 오늘이 싱코 드 마요인데 칩이랑 살사도 없나?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메말라졌지?"
아, 그렇네. 5월 5일은 한국은 어린이날이겠지만 여기는 '싱코 드 마요' 축제일입니다. 말 그대로 5월 5일이란 뜻이기도 하지요. 이 스페인어가 여기서 일상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 이곳에서 라티노 문화가 얼마나 삶에 녹아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멕시칸 이민자들이 많다는 것도 됩니다. 이 날은 1862년 멕시코의 민병대가 푸에블로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군대와 싸워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멕시코인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이 날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지요.
이 축제일엔 멕시코 레스토랑들이 차고 넘치고 일반 잡화점에서도 '코로나' '도스 에뀌스' '테카테' '모델로' '클라라 파시피코' 같은 멕시코 맥주들이 엄청나게 팔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대목이지요. 그런데 왜 올해는 이 날을 이렇게 모르고 지나갔지... 싶습니다.
평소에 마켓에 가 보면 벌써 5월이 되기도 전에 온갖 멕시코 식 장식들로 가게 선반들이 우글버글할 텐데도, 이런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수도 있습니다. 제 구역에서 가까운 곳엔 한인들이 운영하는 잡화점이 세 군데나 있는데, 올해는 모두 그냥 배너 한 장씩만 달랑 걸어놓고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건설 경기가 중단된 것에서부터 기인한다고 보면 됩니다. 멕시코 이민자, 특히 우리가 여기서 '불법이민자'라고 부르는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보면 옥수수를 재배하던 농장노동자 출신이 많은데, 멕시코에서 이같은 대량 집적 농업 부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무려 150만.
그런데 이른바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체결 이후 미국에서 기계로 재배하는 값싼 옥수수들이 대량으로 멕시코로 흘러들어가면서 가격 면에서 전혀 경쟁이 되지 않는 옥수수 농장들은 파산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여기서 일하던 농업 노동자들도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노동력을 흡수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 내에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으로 멕시코 이민자들의 유입이 늘었고, 이중 영어가 되고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공사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거품을 키워 경제를 살리던 시대, 드디어 부동산에까지 이 거품키우기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건설 붐이 불었고, 그것은 상업용이든 주택이든 가리지 않고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몇년동안 부풀려진 이 경기에 힘입어 멕시코 출신 노동자들이 꽤 많이 건설업으로 유인됐습니다. 이것은 도시의 경우고, 시골의 경우엔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어쨌든, 이들이 대량유입되면서 이들이 쓰는 임금은 곧장 한인들이 많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로 유입됐습니다. 잡화점이나 식당, 또는 송금업자들과 싸구려 모텔을 운영하던 한인들은 이 몇년 동안 꽤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집을 사고, 집을 늘리고, 그것도 모자라 또 집을 사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도 많았고, 모텔 등을 벗어나 큰 호텔을 사는 이들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인들의 주요 비즈니스 패턴은 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이 부에 만족했고, 한인 사회 안에서는 가게들이 웃돈을 주고도 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부동산업자들이 주가 된 '모노폴리' 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서브프라임 사태가 왔고,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은 그 모노폴리 판 자체를 걷어가 버렸습니다.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만일 부동산에 투자했었다면 이제 원금 가치보다 폭락해 버린 자기 집이나 부동산 때문에 물건을 내던져 버리던지, 혹은 계속 살려면 터무니없는 이자율로 모기지를 갚아나가는 길 밖엔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경제의 사다리 가장 밑바닥에서 계절노동으로 버티고 있던 멕시칸 노동자들은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 계층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그들의 신분 상황 때문에 아무런 사회안전망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서 농업 쪽의 계절노동을 하던가, 아니면 일용직으로라도 근근히 버티던가, 아니면 아예 미국을 떠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당연히 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한인 비즈니스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비록 힘든 일을 해도 낙천적인 이들이 벌이는, 해마다 5월 5일이면 시끌벅적했던 이 싱코 드 마요 축제의 흥겨움을 올해는 보기 힘들 것 같군요. 지금쯤은 거리에 가득 차 있어야 할 그 축제의 분위기, 올해는 정말 찾기 힘듭니다. 사실 지금 미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 경제의 모순을 깨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축제의 즐거움'을 제대로 즐기긴 힘들 것입니다.
아마 오늘 같은 날 아무 걱정 없이 싱코 드 마요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은 정말 이곳에서는 선택받은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축제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 언젠가는 우리 모두 축제를 거리낌없이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하려면, 정말 미국은 지금 상황을 근본부터 개혁하지 않으면 힘들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