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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서는 국지적 전투에서 이겼을 뿐이라며 깎아내리느라 바쁘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면적 전쟁에서 승리한 셈이라고 추켜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허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손학규 씨가 원정경기에서 예상 밖의 승점을 수확하고서 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일단 인정한 연후에야 손학규를 끌어내리든 계속 띄우든 올바른 진단과 판세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마땅할 사실을 한 가지 더 일러준다면 손학규 씨 주변의 측근 수하들을 제외하고선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점이다. 반면에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폭넓게 널려 있다.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대중의 인식에 자리매김하는 전략, 이건 손학규 캠프에서 상당히 머리 잘 쓴 거다.
경험적으로 평가하자면 손학규 씨 본인은 머리가 그리 좋은 축에 속하지 않는 인상을 풍기지만, 참모들은 비교적 두뇌회전이 빠른 느낌을 준다. 관건은 머리회전이 빠른 만큼 철학적 깊이도 있느냐는 거겠으나. 철학적 깊이가 부족한 부류가 마케팅 기술만 기형적으로 과잉 발달하면 딱 노무현 정권 꼴 나기 십상이다. 전성기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핵심 심복들, 머리 참 비상하게 잘 돌아갔다. 대신에 날이 갈수록 가슴은 차가워져갔다.
여기 손학규 이외의 또 한 사람의 유명 정치인이 있다. 바로 정동영 씨다. 정동영은 손학규와는 정반대 길을 부지런히 걷고 있다. 그는 유권자들이 자신을 좋아하게끔 만들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유시민 씨의 절친 한홍구와 서해성인지 하는 무슨 소설 쓴다는 인간들 데리고서 한겨레신문 기자 면전서 재롱 피우는데 참으로 목불인견이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서 어떻게든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고 온갖 수모와 모독을 감수하고 있더라. 그건 직설이 아닌 굴욕이었다. 문자 그대로 정동영의 굴욕!
특별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 정동영의 굴욕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달갑지 않은 굴욕의 행진을 종식하려면 DY 본인의 대오각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대오각성이라고 하여 꼭 반성문 쓰라는 뜻은 아니니 괜한 오해 마시라. 본디 반성문은 지식인들이 쓰는 것이다. 정치인의 존재의 이유는 최후까지 뻔뻔하게 소신과 신념을 밀고 나가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데 요즘엔 정치인과 지식인의 역할이 뒤바뀐 형국이다. 최근 들어서 진중권이 연출하는 행보를 보니까 은근슬쩍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타려는 기색이 농후하더라. 진중권 씨는 민주당으로 바꿔 타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 그가 ‘민주닭’이라면서 수시로 조롱하고 능멸해온 민주당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진솔한 마음자세로 반성문을 제출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정동영 씨가 촌음의 지체조차 없이 해야만 할 일은 국민들이 정동영을 좋아하도록 만들려는 헛짓거리를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그를 필요한 사람으로 믿게끔 작업의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다. 서두에 분명히 전제했다. 사람들은 손학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지 필요로 할 따름이라고.
경기 끝났으니 약간의 후일담을 소개해도 될 것 같다. 내가 출병한 장소로 파업을 벌이고 있는 전주의 시내버스 기사들이 몰려와 사무실 쪽을 향해 스피커를 돌려놓고서 집회를 가졌다. 물론 이제는 너무나 낯익은 풍경이 돼버린 ‘그들만의 집회’였다. 당대표인 손학규 씨가 전주시장이나 전북도지사를 압박해 노조에게 유리한 쪽으로 파업사태를 타결시켜 달라는 바람이었으리라. 근처에 위치한 입시학원들로부터 항의전화 걸려오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참 딱한 노릇이었다. 절박한 생존권 위기에 직면한 까닭에 전주에서 멀리 수도권 신도시까지 올라온 버스기사들의 입장도 딱하고, 버스기사들과 유권자들 사이에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캠프 사람들 처지도 딱했다. 그 딱한 틈바구니에서 화살과 눈총은 어쩔 수 없이 정동영에게 돌아갔다. 사람들마다 머리 맞대고 수군대면서 정동영 씨를 욕하는데 듣는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DY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고 대신 항변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전주시장도, 전북지사도 모두 정세균 씨가 공천한 족속들인 연유에서다. 그것도 정동영 씨와 가까운 인사들을 모조리 강압적으로 주저앉히고서 말이다.
그럼에도 DY한테 책임과 원망이 귀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동영이 정말로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한 표가 아쉬운 손학규 선거사무실 앞에서 엄청난 민폐를 끼쳐가면서까지 노조원들이 투쟁력이 아니라 ‘잉여력’을 과시해야 할 일은 원천적으로 없었을 터이므로. 정동영 씨가 강남좌파들이나 좋아할 법한 인간형으로 자신을 개조하려고 시시포스처럼 헛심 쓰는 동안에 정작 진짜 그를 필요로 할 서민대중은 정동영을 더는 필요하지 않는 인물로 여기게 된 결과였다.
내 주위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얘기가 있다. 정동영 씨와의 접촉이나 관계가 혹여 있다면 그걸 과감하게 끊어버리라는 조언이다. 지인들이 전해주는 정동영의 문제점을 요약해 열거하면 이렇다. 배은망덕, 후안무치, 소탐대실, 양두구육, 표리부동, 외화내빈.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정동영의 결격사항들이다. 결론적으로 정동영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나는 정동영이 필요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한다.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과 동북아 평화체제의 안착이라는, 한시도 소홀히 하기 어려운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를 중심에 놓고 볼 때 그는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중한 인재다. 이 분야에서는 제도권의 유력 정치인들 중에서, 특히 대권주자로 꼽히는 사람들 가운데 DY를 능가하거나 최소한 필적하는 경험과 수행능력을 가진 인물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알카에다 조직의 창설자이자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에게 살해당했다는 뉴스속보가 들림과 동시에 한반도 정세에는 또다시 먹구름이 끼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고슴도치 전략에 더욱 매달릴 것이 뚜렷한 탓이다. 남한에서는 평양주석궁으로 국군탱크 몰고 가자는 조갑제 따위의 목소리가 한층 커질 전망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에 대해 보다 강경해질 테고.
정동영이 필요한 곳은 또 있다. 현재 주요한 정치인들 중 호남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돌파력과 동원력을 지닌 사람은 사실상 정동영 씨가 유일무이하다. 당초 전주로 본사를 이전할 예정이던 한국토지주택 공사가 갑자기 진주로 행선지를 틀었다. 이른바 시민사회진영에서 이에 대해선 별다른 반대여론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당장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의 논조만 봐라. 불의하고 부당한 영남 퍼주기로 귀결될 것이 명약관화한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취소한 데 대해서는 입에 거품 물고서 이명박 정권 비판에 열을 올리더니만, 호남이 억울한 불이익을 겪는 일에 관해선 실질적으로 오불관언이다. 친노세력도 한겨레나 오마이와 마찬가지 태도를 취하고 있고. 달리 영남 인종주의자들이겠는가?
수복의 누군가가 일전에 일갈했던 바와 같이 남북통일 실현과 지역등권 달성, 요 두 가지 시대적 소명과 관련해서 정동영은 필요를 넘어 필수불가결한 인물이다. 그러나 정동영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들에서 점점 발을 빼고 있다. 왜냐? 자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자기 좋아하는 사람들로 변화시키는, 한마디로 백해무익하기 짝이 없는 영양가 없는 짓에만 골몰하고 있는 탓이다.
정치인의 가치를 고상하고 추상적인 요소들에서 찾지 말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데서, 국민이 필요로 곳에서 효능감을 증명하는 것이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가치창조의 방식이다. 즉 정치인이 가지는 가치란 구체적인 사용가치의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유시민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런 거 없다. 고로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쓸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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