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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당시 오리건주 비버튼에 살고 있으면서 신문사와 라디오에서 일하고 있었던 저는 집에서 푹 쉬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하는 신문사 사장님께서 전화를 했습니다. "권기자, 뉴욕 월드 트레이닝 빌딩에 비행기가 와서 부딪혔어! 빌딩이 무너지고 난리가 났던데?" 그날 아침 얼핏 그런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볻듯 해서 그냥 핀잔을 툭 날렸습니다. "아니, 비행기가 부딪혔다고 무슨 건물이 무너진다고 그래요?" 사장의 말은 다급했습니다. "아냐, 이건 완전 전쟁이야!"
헛, 참. 하면서 TV를 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보게 된 상황은... 이것은 제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보여지던 그 초고층 건물 두 동이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은 거의 꿈 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공상과학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이 실제로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9.11이 미국의 자작극이었다느니, 혹은 이와 관련된 주요 목격자들이나 현장에서 있었던 괴 폭발음에 관한 증언들을 해 왔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살해됐다든지 하는 의혹들도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이 늘 거론돼 왔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 9.11의 배후로 지목된 이후 그는 사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 및 전격 침공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10년만에, 신출귀몰의 수준으로 미국을 피해 다니던 그는 결국 최후를 맞았습니다.
배럭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빈 라덴의 사살을 발표하는 모습에서 저는 솔직히 아덴만 여명이란 것이 겹치는 짓궂은 생각을 떨쳐버리진 못했지만, 일단 재선을 노리는 그에겐 호재였을 것 같습니다만, 더 큰 그림 하나가 언뜻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9.11 이 자작극이었던 어쨌던 간에, 이 거대한 음모던 혹은 사건이던 간에 막 하나는 내린 셈입니다. 중반부 클라이막스가 사담 후세인에 관한 처형으로서 이뤄졌다면, 지금 이 10년이 걸린 대하드라마는 (또다시 조작 음모론이 돌긴 하지만) 빈 라덴의 사살로서 막을 내린 셈입니다.
물론, 알 카에다의 테러 위협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테러 위협이라는 것이 실제적이며 구체적이라는 것에서 이것이 아직 완전히 막을 내렸다 속단은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일종의 '앵콜 커튼콜'인 셈이고, 본막은 내렸다고 봐야 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아직 열리지 않은 새로운 무대가 아닐까 하는 느낌은 듭니다. 이제 미국은 어쨌든 간에 아프간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4천 4백억 달러를 넘어 써 가면서 빈라덴 하나 잡은 셈인데, 그것이 미국에 어떤 식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겁니다. 이 나라의 경쟁력, 이 나라의 복지, 이 나라의 교육, 이런 모든 것들을 충분히 마련하고도 남을 재원이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으로 소모된 셈인데, 일단 오바마 대통령의 계산은 철군의 명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리비아 전쟁을 빼 놓고도 최근엔 거의 하루 8억달러씩 소모되는 전비를 감당한다는 것은 아무리 '한때' 최 갑부국이라던 미국으로서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오바마로서는 어떻게든 지금 이곳에 들어가는 전비를 줄여야 할 형편입니다. 그래야만 또다시 행정부가 문 닫는 사태로의 위협 같은 것도 잡아둘 수 있을 것이니까요.
사실 이것이 우리에게 실제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접을 경우, 군부와 특히 군산복합체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새로운 돈 덜 드는 국지전을 마련하려 할 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그것은 분명히 어느정도 현실성 있는 이야기라고 보여지는데, 그렇다면 지금 미국이 숨을 돌리고 난다면, 그들의 새로운 '궁극적 타겟'은 어디가 될 수 있을까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금까지 진정 '전쟁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 기간'을 누린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늘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전쟁을 필요로 해 왔던 나라죠. 그렇다면 이들이 지금 숨을 돌리고 나서 어디를 바라보게 될까요?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도 함께 깊이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