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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기하고 희한한 경험이었다. 내가 평소에 맹렬하게 비판해오던 정치인들을 일망타진하는 기분으로 모두 다 만났으니 말이다. 국민참여당 대표를 맡고 있는 유시민 씨까지 덤으로 봤다면 그야말로 올킬할 수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인물이 바로 직전의 민주당 당대표였던 정세균 씨였다. 내 얼굴을 알 턱이 없으니 나한테까지 정말로 반갑게 악수를 청하더라. 속담대로 역시 등잔 밑이 어두운 모양이다.
내게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도 비추지 않을 정세균 씨 얘기를 새삼스럽게 하게 된 이유는 4월 27일의 재ㆍ보궐 선거 이후 요란스럽게 출렁이고 있는 이런저런 여론조사 결과의 지표들 중에서 정세균 씨에 관한 수치가 유달리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그의 지지율은 1퍼센트 포인트였다. 투명인간이 돼버린 현재의 지지도가 그가 제1야당 당대표로 잘나갔던 시기의 그것과 견주어 요지부동인 형국이다. 물론 오차범위 따위의 세세한 고려사항들은 깡그리 무시한 분석이므로 지나치게 꼬치꼬치 따지기 말기 바란다.
“당대표일 때나 아닐 때나 1프로!” 내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하고 있을 적에, 강남역 근처의 이면도로에 주차된 자동차의 정면유리에 끼어 있던 “만지나 안 만지나 3만 원!”이란 어느 단란주점 광고전단지의 내용을 연상시키는 신비스러우면서도 엽기적인 여론조사 지지율이다. 정세균 씨의 이와 같은 지지도 추이를 뜻있는 정치학자나 호기심 충만한 여론조사 전문가가 학문적 차원에서 나중에라도 한번 제대로 짚어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신기해서 그렇다.
내 나름대로 굳이 정세균 지지율의 미스터리를 풀어본다면, 당대표 시절의 정세균 씨는 자기 자신이 민주당 당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희망과 청사진을 국민들에게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는 데 그 비밀의 열쇠가 들어 있을 듯싶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세균 씨는 민주당의 가치를 부정하는 민주당 당대표, 더 심하게 표현하면 민주당 그 자체를 저주하고 비관하는 민주당 당대표였다. 그러니 민주당 당대표라는 브랜드가 여론조사에서 그에게 아무런 플러스 요인을 제공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민주당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시종일관 저주하고 비관한다는 측면에서는 정세균 씨에 뒤이어 민주당 당대표에 취임한 손학규 씨도 본인의 전임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분당을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에게 기적적으로 승리한 손학규 씨가 그 후 국민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메시지를 나는 유심히 관찰해왔다. 실망스럽게도, 사실은 충분히 예상했던 터이므로 그리 큰 실망감은 들지 않았지만, 민주당의 당원 및 그 오랜 지지자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은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민주당 당대표로서 당원들과 전통적 지지층에게 표시해야 마땅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립 서비스조차 실종된 셈이다.
나야 며칠 동안 집 대신 찜질방에서 잠잔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허리근육 좀 뻐근하고 감기기운 약간 도는 게 전부겠으나, 당대표가 민주당 소속임을 극구 감춰가면서 선거운동 하는 모습을 자존심 팍팍 죽여가면서 때로는 먼발치에서, 때로는 지근거리서 바라봐야 했을 당원과 지지자들은 창자의 절반쯤이 끊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쳇말로 단장의 아픔을 겪고 있으리라.
한 가지 다행스러운 구석은 당대표로서 당내의 유력한 경쟁자들을 숙청하는 일에만 골몰했던 정세균 씨와는 판이하게 손학규 씨는 고대 카르타고 제국의 용장 한니발처럼 상대방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로로 진격해가서 적국의 본진을 신나게 유린했다는 점이다.
북아프리카 열사의 사막에서 잔뼈가 굵었을 한니발이 전투용 코끼리까지 이끌고서 눈보라 몰아치는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의 본토로 쳐들어오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한민국의 어떤 정치평론가나 정치부 기자가 한나라당 사람들이 천당 아래 첫 동네라고 주구장창 노래불러온 분당에다가 손학규가 깃발을 꽂으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가 있었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면 역적의 무리로 전락하고, 이기면 영웅의 반열에 등극하기 마련이다. 정세균 저리가라 할 정도로 당을 경원하고 무시하던 손학규는 단 한 차례의 승리로 민주당의 영웅이 되었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던 한니발의 찬란한 무훈은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칸나이 평원에서 마침내 그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서 한니발은 80명의 원로원 의원을 포함하는 8만 명의 로마군을 몰살시켰던 것이다. 한니발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준 칸나에 전투는 서구 여러 나라의 사관학교에서 군사전략 과목의 교재로 사용되는 중이다. (도서출판 말글빛냄에서 펴낸 ‘임페리움’에서 인용함.)
허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역사의 치명적 교훈은 한때는 불세출의 영웅으로 지중해 세계를 호령했던 한니발이 결국은 카르타고 멸망의 원흉으로 후세에 의해 지목되고 말았다는 거다. 유명한 칸나에 전투로 대표되는 포에니 전쟁이 벌어졌을 당시에 로마와 그 동맹국의 인구수는 무려 600만 명에 달한 반면, 카르타고와 그 식민지의 총인구는 고작 70만 명 안팎이었다고 한다.
출처:수복(본 칼럼은 유료칼럼이므로 무단전재 퍼가기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