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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4월30일 광주 광역시에 위치하고 있는 대안학교 용연중학교를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이 살아왔던 과정을 들려주며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이희호 여사는 이날 오후 4시 김대중 전 대통령 팬클럽인 DJ로드(회장 장준용)가 광주 동구 지원동 용연중학교에 마련한 행사에 참석, 주민과 학생 2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님의 민주·인권·세계평화를 위한 삶'이라는 주제로 10분여 동안 강의를 진행했다.
이 여사는 "용연중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 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새로운 희망을 갖고 공부해 90%가 넘는 진학률을 자랑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학교로 만들었다"며 칭찬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 "용연중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과 제 남편인 김 전 대통령의 삶은 많이 닮은 것 같다"며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일제시절에 전남 신안군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강조했다.
이 여사는 또 "남편은 일본인 교사와 학생들 속에서도 조선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고 정치에 뛰어 들었다"며 "하지만 정치인생도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면서 순탄치 않았지만 남편은 인권과 평화를 위해 무릎 꿇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마지막으로 "남편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얀 백지를 꺼내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좋은 면들을 적어보며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며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면서 내일의 희망과 꿈을 키워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 여사는 5월 1일에도 광주 화정 교회를 방문해 강연회를 가졌다.용연중에서 강연하신 이희호 여사 강연내용 전문은 아래와 같다.
...........................이희호 여사 강연문 ..............................................
오늘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용연중학교는 매우 소중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곳 중연중학교에 와서 새로운 희망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90%가 넘는 진학률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학생들이 희망과 용기를 다시 찾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용연중학교가 비록 광주에서 가장 큰 중학교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중한 학교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용연중학교를 키워주신 시교육청과 용연중학교의 이사님들과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남편 김대통령은 1924년 일제시절에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외딴섬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바다를 보며 꿈을 키웠습니다. 언젠가는 저 육지로 나가 큰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간직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목포로 이사해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남편의 어머니, 즉 제 시어머니는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하의도에 있는 논과 밭을 팔고 목포에 와서는 여관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학창시절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점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본인 교사, 일본인 학생들과 지내면서 조선인 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도 받고 미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절대 굴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남편은 일본은 곧 망할 것이고, 조국이 해방되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큰일을 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조국이 해방된 후 목포에서 사업을 하다가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남편은 한국전쟁에서 피난길에 수많은 죄없는 국민들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것을 본 후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질 때 국민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남편에게 숱한 좌절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남편이 정치를 할 때는 군사독재시절이었습니다. 군사독재자들은 일본에 있던 남편을 납치해 바다에 던져 죽이려고 했고, 80년 민주화의 봄이라고 좋아하던 때는 각 지방에서 초청 강연회가 열렸었는데 그해 5월 초 갑자기 마포경찰서 형사가 연행해 갔습니다. 그후 8월에서야 면회를 하게 됐는데 정보요원과 마포서 정보과 형사가 같이 가야했습니다. 나는 1년간 연금돼서 면회 날에만 남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광주 민주화 운동 전날 연행됐는데 광주민주화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을 감옥에 보내고, 집에 연금시키기도 하고, 다른 나라로 망명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세월이 무려 30여년이나 됩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러한 박해 앞에 절대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도 않았고, 독재자들에게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학생 여러분!
인생에는 항상 좋은 일,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일, 슬픈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인생을 사느냐, 실패하는 인생을 사느냐의 문제는 자신에게 닥친 나쁜 일, 어려운 일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신을 둘러싼 힘든 환경만을 탓하고 좌절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사람이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남편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얀 백지를 꺼내 위에서 아래로 줄을 긋고, 한쪽에는 자기에게 닥친 어려움을 적고 다른 한쪽에는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좋은 면들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다보면 어려운 점은 한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좋은 점은 너무도 많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젊고 건강하고,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친구가 있고, 나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있고 등등” 너무 많은 좋은 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어려운 점만 크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인생에는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려운 일들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거기에 좌절하는 것입니다. 항상 자신을 둘러싼 좋은 점들을 크게 생각하고, 좋은 점들을 더욱 크게 키워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려운 점들은 작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
남편은 30여년간 고난의 세월을 거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인생에서 더욱 소중한 것은 이런 영광의 자리보다는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환경을 신념과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이겨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은 매우 소중한 사람입니다.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면서 내일의 희망과 꿈을 키워나가길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