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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인기관광 물 가운데 '마담 투소우'라는 납 인형박물관이 있다.이곳 납 인형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헨리8세와 그 뒤에 서있는 6명의 왕비들의 모습이다.왕비 6명중 앤 보일린 등 2명은 간통죄를 뒤집어쓰고 교수형을 당했다.
헨리8세는 왜 6번이나 결혼 했을까. 아들을 낳기 위해서였다.막강한 프랑스, 스페인으로부터 영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주가 튜더 가문을 잇기는 너무 약해 왕자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편집증이 있었다.
아들을 못 낳는 왕비와 이혼하려다보니 헨리8세는 로마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었고 이에 반발하여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여 세운 것이 오늘의 영국정교회(영국국교회, 또는 성공회로도 불림/방장 註)다.
그리고는 아무도 자신의 결혼에 간섭하지 못하게 하기위해 영국국왕을 교회의 우두머리로 선언했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헨리 8세'는 바로 왕의 결혼 때문에 영국이 어떤 진통을 겪었는가를 그린 희곡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아들을 (합법적으로) 못 얻는다.결국 파란곡절 끝에 교수형을 당한 앤 왕비의 딸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르는 역설적인 역사가 이루어진다.
영국국왕은 왕인 동시에 영국국교의 수장이며 상징이다.영국에서 왕위 계승권자의 결혼이 뉴스중의 뉴스인 것은 왕이 교회의 수장을 겸하기 때문이다.남편을 둔 미국여성 심슨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에드워드8세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동생(조지6세. 엘리자베스여왕의 아버지)이 왕에 오른 것도 영국교회의 체면이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엘리자베스여왕은 13세 때부터 부군인 필립공과 연애했기 때문에 별 말썽이 없었으나 필립공은 영국인이 아니라 그리스왕실의 왕자였다.원래의 이름은 앤드류왕자다. 그런데 2차 대전 때 그리스왕실이 히틀러 편을 들어 말이 많았다. 그는 엘리자베스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영국시민으로 귀화 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영국해군(비행대)에 입대했다.
필립 공은 여왕의 남편이기 때문에 부인인 엘리자베스 가문의 '윈저'를 라스트네임으로 쓰고 있지만 아들인 찰스나 손자인 윌리엄에게는 윈저가와 그리스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
찰스는 다이애나와 왜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는가.다이애나의 말을 빌리면 찰스는 딸을 너무나 원했기 때문에 둘째아들 해리가 태어나자 말 한마디 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산실에서 나갔으며 이때부터 다이애나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찰스측근이 쓴 자서전은 약간 앵글이 다르다.다이애나가 가는 곳마다 뉴스의 초점으로 등장해 왕위계승권자인 남편이 빛을 잃게 했다는 것이다. 다이애나가 너무 설쳐 찰스왕자가 다이애나를 수행한 것처럼 보이는데서 오는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영국에서 왕의 결혼은 항상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왔다.왕의 결혼을 반대하다 런던타워에 갇혀 사라져간 사람 중에는 토마스 모어 경,토마스 크롬웰 경, 앤 왕비 등 수없는 귀족들이 있다.돈 있고 명예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은 더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영국왕실의 결혼이다.
미국 매스컴들은 29일의 윌리엄왕자 결혼식 취재에 열띤 경쟁을 벌였으며 매일 특집방송을 하는 등 지나친 법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주류는 앵글로 색슨계인 WASP이다. 그 인구도 자그마치 5,500만 명에 이른다.
낸시 레이건이 "백악관 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에 초대 받았을 때 였다"고 말할 정도이고 보면 왜 요즘 TV뉴스가 윌리엄왕자 결혼식으로 온통 도배되어 있는지 이해가 간다.
<이철/미주 한국일보 고문/LA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