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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하셨다. 그는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어 독재권력에 저항하면서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고, 끝내 대통령에 당선돼 민주화 세력이 주도가 되는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와 더불어 그의 정치철학에 담긴 중심 가치였고, 이에 대한 실천 공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국제사회의 높은 평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였던 최고의 브랜드 파워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제적 브랜드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도 힘이 됐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 서민경제와 복지, 남북화해와 평화를 중심에 둔 진보적 정책으로 한국의 국가 전략에 전환점을 만들었던 정치인이었다. 보수 기득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도 만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분열의 정치사회 구조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를 반대하거나 경계하는 쪽으로부터는 가혹한 평가를 받기도 했고, 때로는 왜곡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분열의 정치구조와 관련해 김대중 정부의 집권 전략이었던 DJP 연합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일 DJP 약속이 지켜지거나 시도됐다면 오늘날 한국정치의 문제가 되고 있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극화의 정치, 또 지역주의 딜레마를 완화하는 데 좋은 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마지막 국민을 향한 발언은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의 위기라는 이른바 3대 위기에 대한 우려와 경고였다.
퇴임한 대통령의 과도한 정파적 발언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 남북의 화해와 평화는 김 대통령의 정치철학 기조였고, 대통령 재임시 주도했던 핵심 정책 방향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정책 기조를 모두 되물리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국가통제가 강화돼 시민권은 축소되고 약자들은 양육강식의 자유경쟁 시장에 던져지고 있다. 대북협력 사업은 대부분 교착상태가 돼 있다. 국제적 브랜드 가치였던 한국의 인권위가 ICC의장국 기회까지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일어났다. 안타깝게도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역주행을 통탄하는 가운데 서거했다.
당사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김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민주화와 민족화해를 향한 고인의 열망과 업적’을 높이 산다고 했다. 추모 인사치레의 허언이 아니라면 새로운 성찰과 이에 따른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알다시피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가 있었다. 해외에서는 김 대통령과 더불어 아시아 민주화 상징이었던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도 지난 7월 서거했다. 한 시대의 흐름이 지나 가는 것 같다. 여전히 김대중의 지도력에 의존해 온 민주화 진영의 재정비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정치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고 김대중 대통령, 한국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인 최고의 브랜드 파워 대통령. 외환위기를 극복하며 오늘의 IT 강국 기반을 다진 대통령! 서민에 대한 애정, 복지, 인권, 평화의 가치를 강조하는 그의 노선에 절대 공감한다. 남은 과제는 남은 자, 미래의 몫이다. 삼가 고 김대중 대통령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