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보선에서 강원도, 분당 을에서의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김해 을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군요. 이로서 가시적으로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대권가도가 닦이고, 유시민 참여당 대표에겐 먹구름이 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아, 다 이겼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이 선거로 인해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외에 피본 사람은 분명히 엄기영씨 밖엔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로 인해 웃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이번 선거는 겉으로 보면 민주당의 승리이며 한나라당의 참패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유의하고 넘어가야 할 점들이 분명히 짚여집니다. 우선은 한나라당 내의 분화가 가속될 것입니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분리 가속화지요. 일단 친이계의 책임론이 등장하고, 한나라당 내에서의 친박계의 결속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한가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에 한나라당 쪽에서는 선거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누구도 이 선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박근혜씨도 아무런 유세조차 하지 않았고, 당에서도 특별한 지원은(김해 쪽에서는 모종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은 재보선에 총력을 다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이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걸 민주당의 승리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은 유시민이라는 껄끄러운 존재를 견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고, 굳이 그들이 나서지 않아도 이른바 진보진영 쪽에서는 유시민 책임론을 물어 찍어 누르려 할 테니,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 쪽에서는 '손 안 대고 코푼 격'이 됐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왜 비록 이런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정부가 선거 바로 직전에 건강보험료 인상을 발표하고, 그 바로 전엔 복학생도 예비군 동원 대상으로 만드는 등 표 깎아먹을 것이 분명한 일련의 행동들을 했느냐는 것이지요.
또 바로 그 전엔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취소하는등, 전혀 앞으로 커다란 몇 건의 선거를 앞둔 정치세력답지 않은 일들을 했다는 것이지요. 확대해석은 경계되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추후의 선거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은, 박근혜씨가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상황인데도, 그쪽 표 기반을 털어먹기 하고 있다는 것과도 마찬가지 이야기가 됩니다. 즉 지금의 구도를 가지고는 총선도, 대선도 치르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군은 이미 MB에 가장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으로 채워져 있고, 농협사태나 청와대 비서관과 재계 실세들의 잦은 회동이 주는 인상을 대입해 본다면 이건 뭔가 모종의 '실탄만들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여기에 이번 선거결과로 인해 한나라당의 친이계와 친박계의 결별이 점점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면, 이것은 선거가 아닌 뭔가 다른 것으로 정권연장을 이루겠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자꾸 짙게 드는군요.
물론, 이것은 억측이고 시나리오에 불과합니다만, 만일 하나라도, 현재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지금의 판 자체를 부정한다면...?
지금까지 슬슬 흘러나왔던 개헌론 같은 것에 비추어볼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박근혜 신당 창당론'이나 다른 엉뚱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딱 좋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결집이 아닌, 오히려 한나라당 내부에서 스스로 분열을 재촉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목적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 구체화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이번 재보선 결과에서 지금 남몰래 웃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뇌리를 떠나지 않네요. 실제로 우리의 역사 안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었던 적들이 몇번 있었다는 걸 상기해본다면, 우리가 지금 이 선거에서 분당을과 강원도에서 민심의 심판을 보여줬다고 마냥 웃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손학규씨가 대선에 나와 이길 수 있을 만큼의 인물이라고 생각해본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판이 그대로 깨져나갈 수도 있는 상황'을 그냥 지켜보는 것은 더욱 싫습니다. 그것은 지난 두 정권 동안, 그리고 그 이전에 6.29 항복선언을 통해 어렵사리 쟁취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마저도 뒤로 돌려버리는 완벽한 과거로의 회귀가 될 것이니 말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