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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 시작하기 전에 잠깐 인터넷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마음은 참 가볍습니다. 일은 가볍지 않지만, 억지로 또 남의 라우트 30분 정도를 떠맡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날아갈 듯 합니다.
다음주 한 주간 휴가를 냈는데, 사실 이번주말이 제 롱 위크엔드라 금요일, 토요일도 쉬고, 쭉 그 다음주를 쉰 다음에 그 다음주 월요일은 제 원래 휴무일이기 때문에 열흘 정도의 휴가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7월 중순에 한 주, 8월 말에 두 주간의 휴가를 내어 놓았으니, 그 몇 달간 다시 열심히 일할 재충전이 되는 셈입니다.
문제는 휴가 기간동안 할 일들이 참 많다는건데, 학교 수업이야 여전히 있고 휴가 끝나는 날 바로 다음날이 중간고사라 공부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책도 읽어야 하고, 집 뒤의 나무를 자를 생각이고, 수요일엔 병원가서 매년 받는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고, 당장 오늘 밤부터는 성당의 성삼일 예절의 참례해야 하니 일요일까지는 뭐 꼼짝마라고, 다음주 목요일엔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갖기로 했고...
아, 하루는 부모님 집 카펫 갈기 위해 짐 나르는 것을 도와드려야 하고... 생각해보니 일할 때보다도 더 바쁜 한 주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같아서는 워싱턴주 남동부에 위치한 지난번에 다녀 온 왈라왈라에 와인 테이스팅을 위해 한번 더 다녀오고 싶은데... 시간이 받쳐주질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올해는 딱 한 달의 휴가를 쓰는 셈인데, 지금 제 경우는 원한다면, 또 모아놓은 휴가 시간이 충분하다면 6주간의 유급휴가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참 고마운 일입니다. 만일 제가 부모님을 도와 가게를 하고 있었다면 휴가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복지 체계 아래서 '시간'이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는 셈입니다.
당연히 본봉이 지급되므로 별로 돈 걱정 안하며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이겠지요. 매 두 주마다 봉급이 통장으로 자동 이체되는데, 그 때마다 여섯 시간의 연가가 여축되어 나오고, 네 시간의 병가가 주어집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연가는 5백여 시간이 모인 뒤엔 더이상 쌓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때문에 연가는 억지로라도 써 줘야 합니다. 대신 병가는 계속해 쌓이고, 이것은 나중에 은퇴할 때는 그대로 계산해 돈으로 돌려주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도 미국 친구들은 병가를 모으지 않고 써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가 진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남들에게 병가나 연가를 기부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병가와 연가는 양도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런 것들은 제가 일하는데 있어서 에너지를 부어주는 일입니다. 재충전하고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게 가능해진다는거죠.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생산성에 있어서도 도움되는 일입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은 우리 뿐 아니라 전 사회가 누려야 한다는 것인데, 언젠가부터 직장에서 받는 이런 혜택들은 하나하나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자유주의가 사회의 운용기조가 되고 난 레이건 이후부터인데, 그리고 나서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미국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여 이른바 '유동성'을 보다 확대시켜 확보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국외로 가져갔고 그 결과 처음엔 이윤을 내는 듯 보였으나 이것이 한 세대 후인 지금 어떤 식으로 미국 사회를 망가뜨려 버렸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 전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복지 정책을 구가하고 있던 미국이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자기들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철저히 사회가 '이윤 추구 주체의 이익'만을 위해 돌아가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어떤 식으로 망가지고, 부의 편재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사회'라는 것이 다수가 아닌 소수를 위해 운용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가 금방 판단됩니다.
문제는 이런 사회 구조의 왜곡에 대해 극소수의 대자본과 권력, 그리고 그들과 야합한 언론이 결탁하여 그들의 권력과 금력 유지를 위해 늘 현실을 왜곡하려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 때문에 눈이 멀어 자기의 처지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늘 중요합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그것이 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적어도 대의민주주의를 사회의 기존 운용 시스템으로서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이라면 당연히 투표에 모두 참여해 자기들의 몫에 대해 분명한 주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개인개인의 삶에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보다 건강하고 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고자 하는 공리주의적 차원에서도 분명히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