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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속도’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과 그를 추종하는 한나라당 지도부에 의해 우리나라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그런데 여당 소속 의원 한 사람이 이런 정부와 여당의 ‘무한질주’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것도 초선 의원이.
얼핏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 같지만 그의 거사는 가히 혁명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다.
바로 지난 15일 국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ㆍEU(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 직전, 기권을 선언하면서 여야 충돌을 막은 홍정욱 의원의 의연한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국회 자정을 촉구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18일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국회 폭력방지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홍 의원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한나라당의 ‘국회 바로 세우기 모임’과 민주당의 ‘민주적 국회운영 모임’이 이날 오전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국회 폭력 방지 대책 등을 논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 등 국회 몸싸움 추방을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이번 4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통과될 수 있도록 여야 원내대표들이 합의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 사람의 초선 의원이 여야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 이 대통령의 ‘속도전’은 여야 갈등을 초래하는 근원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들 역시 ‘절차’를 무시하고, ‘속도’에 매달리는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다.
오죽하면 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4대강 죽음의 속도전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겠는가.
이 대통령이 자전거 축전에서 4대강사업을 자화자찬하던 지난 주말에 4대강사업 공사 현장에서는 3명의 고귀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4월 한 달에만 5명, 올해 들어서는 11명, 2010년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18명의 소중한 목숨이 4대강공사 현장에서 사라진 것이다.
현장의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6월 완공을 위해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속도전’을 위해 지난 연말 새해예산을 날치기 처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금 4.2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은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실제 4.27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완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전망이 나왔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을의 경우 각종 여론조사 결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경남 김해 을은 아예 ‘난공불락’이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여당의 김태호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인 이봉수 후보간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한나라당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강원도지사 선거에서도 역전 가능성이 제기될 만큼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한ㆍEU FTA마저 강행처리 했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한나라당 후보들은 모두 자폭하는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이런 최악의 상황을 홍정욱 의원이 막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홍 의원의 소신 있는 행동은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큰 힘이 된 셈이다.
즉 4.27 재보궐선거의 ‘일등공신’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날 홍 의원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물리력을 동원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원들의 개인적 소신을 존중한다"면서도 "표결을 통해서 정상적으로 의사일정을 진행하는 것이 물리력인지, 정당한 의사진행을 힘으로 막는 것이 물리력인지, 홍정욱 의원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제 2의 홍정욱’ 탄생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야당은 물론이고 우리당의 젊은 일부 의원들도 정당한 표결절차를 거부하고 물리력으로 막는 것까지 당위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홍정욱 의원이 추락하는 한나라당 지지율을 멈추는 데 상당한 일익을 감당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거듭 말하지만 홍 의원은 한ㆍEU FTA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다만 여야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무시한 채 힘을 앞세운 여당이 일방적으로 강행처리는 하는 것을 반대했을 뿐이다.
즉 ‘속도’ 못지않게 ‘절차’가 중요하다는 점을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는 말이다.
이번 기회에 정치인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한번 쯤 음미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출처:시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