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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기권입니다. 기권이예요."
이는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의 말이다.
지난 15일 국회 외통위에서 한나라당은 한-EU FTA 비준안을 기습 강행처리하려 했다.
실제 한나라당 유기준 위원장이 얘기 도중 갑자기 표결하겠다며 기습표결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고 고성이 오갔다.
외통위 법안소위는 한나라당 소속 4명, 민주당 의원 2명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모두 찬성하면 비준안은 날치기 처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소속 최병국, 김충환 의원이 위원장과 함께 찬성의사를 밝힌 반면, 홍정욱 의원은 “기권하고 퇴장하겠다”며 그대로 회의장을 빠져 나가버리고 말았다. 결과는 찬성 3, 반대 2, 기권 1.
과반수이상의 찬성을 얻어야만 법안이 통과되는 데, 홍 의원의 기권으로 법안은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유기준 위원장이 홍 의원의 기권을 ‘찬성’으로 해석하고, 통과된 것이라고 생떼를 부리자, 홍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EU FTA를 적극 지지하지만 물리력을 동원한 일방적인 강행처리에 반대해 기권했다”고 분명하게 ‘쐐기’를 박았다.
사실상 ‘날치기 처리’를 주문한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든 셈이다.
홍정욱 의원의 기권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당 지도부가 외통위에 홍 의원을 빼고 다른 의원으로 바꾸려 했지만, 홍 의원은 이마저도 단호하게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 상에서는 홍 의원을 향해 “멋쟁이 국회의원”이라고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용납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건 국회의 신뢰회복”이라며 “생떼와 강행으로 얼룩진 국회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 해 연말 이른바 ‘형님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한 후 “앞으로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며 “약속을 못 지키면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빠르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르게 하는 것이다. 즉 속도가 아닌 정도"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 왔던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홍 의원의 이번 “기권” 의사표시는 몇 가지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속도’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에게 그 못지않게 ‘올바른 절차’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 4대강 사업은 ‘속도’를 중시하다보니 ‘절차’가 비정상적이다.
그러다보니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그 문제를 감추기 위해 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지류와 지천을 정비하는 사업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절차만 제대로 지켰더라도 이런 후유증은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약속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에서 홍 의원의 이번 거사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만하다.
사실 여당의원 23명이 지난 연말 예산안 날치기 처리 일주일 뒤, “날치기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만 해도 국민들은 그 약속을 믿지 않았다.
한낱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쇼’로 치부하기도 했었다.
한나라당 소속인 이명박 대통령마저 세종시, 과학벨트, 동남권 신공항 등 국민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마당에 초선 의원이야 오죽하겠느냐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홍 의원은 자신과의 약속,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어쩌면 홍 의원은 이번 일로 인해 이대통령의 측근들로 구성된 당 지도부에 미운 털이 박힐지도 모른다.
공천 과정에 애를 먹을 수도 있다.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 당당하게 ‘소신’을 지킨 홍의원의 이번 혁명에 필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정말 이처럼 멋진 국회의원이 우리의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다른 여야 의원들 모두가 홍 의원의 반만이라도 닮으면 얼마나 좋을까?
출처:아침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