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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브란스 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던 김대중(金大中.85) 전 대통령께서 8월18일 오후 1시 43분 서거하셨다.제 15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세계적 인권지도자이며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평화를 사랑한 정치거목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13일 폐렴증세로 신촌세브란스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되어 같은달 22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영면에 드신 것이다.
김 전대통령은 8월 17일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약물치료를 통해 18일 오전 일시 상태가 회복되는듯 하였으나 장기 다발성 부전으로 심작박동이 멈춰지면서 끝내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김 전대통령의 임종은 이희호여사와 홍일,홍업,홍걸등 가족과 권노갑,한화갑,한광옥,김옥두,안주섭,박지원의원등 측근들이 함께 하였다고 한다.
김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으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각 정당,사회각계 지도자들이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있으며 미디어법 무효화투쟁을 전개중이던 민주당은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급거 귀경,장례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외신들도 김 전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주요뉴스로 타전하고 있다.
오늘 서거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5년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의 4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후 목포 북교초등학교와 5년제인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내 경선에서 김영삼 원내총무를 꺾고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석패한 뒤 87년, 92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나 97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잇따라 투옥, 수감되고 납치되어 죽음직전에 이르렀는가하면 해외 망명생활을 하는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
80년에는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기도 하였다.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국제사회의 압력 덕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87년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민정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92년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 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95년 이를 번복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네번째 대권 도전에 나서 이듬해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와의 야권 공조를 추진, 9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건국 후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대통령 재임 기간, 6.25 전쟁 후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최고의 정보화사회를 구현했으며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고,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인척 비리와 보수진영의 인사편중 시비,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반발로 인한 갈등으로 임기 내내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퇴임 후에도 대북 비밀송금과 국정원의 불법도청 사건으로 측근들이 기소되고 현실정치 개입으로 정치권과 마찰을 빚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60년대부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사람이 현실정치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른바 `3김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씨 등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영면에 드시길 두손 모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