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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성을 바로 세우는 민족사 바로 세우기는 민족정기와 국가기강 확립과 직결된다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할 사극은 시청자들인 국민에게는 역사교육자료가 된다.그래서 지나국이나 일본처럼 민족사를 날조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소설가들이나 사극작가들이 민족사를 날조하게 되면 선조를 욕 보이고 민족을 비하하는 역사의 죄인들이 되는 것이다.따라서 삼국사기.환단고기.3국 고대 문헌들의 비교분석, 그리고 고고학 자료들을 바탕으로 철저히 검증해서 역사전쟁에 임한다는 사명감으로 역사소설을 쓰고 사극대본을 써야 한다.
고대 해민족의 이주사와 관련한 중동지역의 [슈메르]와 관련한 역사소설를 쓰기 위하여 소설가 윤정모씨는 10년간 슈메르에 관한 문헌자료와 고고학 자료를 준비하고 슈메르 유적을 탐방한 후에 썼다고 한다. 최소한 역사소설을 쓰고 사극대본을 쓰겠다고 한다면 상업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우리 선조의 진실한 숨결을 찾는다는 사명감으로 임해야 한다고 본다.
예컨대, MBC주몽의 경우도 고추모의 아버지를 해모수로 날조하였다. 사실 연대기적으로도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여(북부여)를 개국한 해모수는 고추모의 증조 할아버지지가 되는 것이지 결코 아버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위 존재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많은 소위 한4군 위치도 만주지역으로 설정하여 지나국의 동북공정논리를 대변하고 말았다.
소위 아직까지 정리가 안 되고 논쟁이 되고 있는 한 4군이 설치된 위치는 마땅히 위만조선의 위치만 알면 해결나는 문제다. 위만조선지역으로 당시 요하를 경계로 부여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지금의 요서지역이다. 소위, 그리고 낙랑군.진번군.임둔군.현도군 하는 한 4군의 나라 이름들은 번조선 제후국들의 이름들이다.
한4군은 위만조선과 1년간 전쟁을 벌이고도 무참히 패배한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용어는 아니다. 왜냐하면 사마천[사기]에도 한나라는 위만조선과 벌인 1년간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하였고, 전쟁에 패한 육.해군 사령관들에게 책임을 물어 한무제가 참수했다고 사마천의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위만조선이 망한 건 전쟁하자는 강경파와 화친하자는 화친파간의 내부다툼으로 결국 화친파가 위만의 손자라는 우거왕을 죽이고 한무제에게 투항하여 위만조선지역의 제후들로 임명받았다는 내용이 한무제 당시 기록으로 한4군은 존재하지 않았다.[환단고기-북부여기]에도 한무제가 우거를 멸하고 4군을 설치하려고 침략하였으나 위만조선의 조선유민세력과 연합한 부여 고두막(동명왕) 군대에게 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무제 시기에 내부붕괴로 한무제에게 투항한 위만만조선의 지배세력에게 위만조선지역을 분할하였고, 부여국경지역인 난하동쪽에 한4군을 설치하였다고 봐야 한다.그러니까 한4군은 한무제가 위만조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설치한 것이 아니라 위만조선이 내부분열로 붕괴하여 위만조선 지배세력이 투항하자 어부지리로 얻어 설치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고로 내부분열은 곧 외세가 침략하거나 개입하여 집단과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위만조선의 멸망은 보여 준다. 위만조선의 멸망을 두고 식민사관에 찌든 강단사학자들은 아직도 고조선의 멸망으로 인식하고 교육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날조다.
위만조선은 단군3조선 중 한나라와 국경을 접한 번조선(기자조선)지역에 연나라 장수 위만이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거짓 충성맹세를 하자 서쪽변방을 막는 사령관으로 삼았는데, 위만이 흑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을 몰아 내고 권력을 찬탈한 후에 세운 나라로 우리 선조들은 그러한 배은망덕한 위만을 강도.도적으로 기록하고 비난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위만조선을 고조선으로 동일시하여 위만조선의 멸망을 고조선의 멸망으로 날조하고 그것도 위만조선을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날조하였으니 천벌을 받을 역사날조인 것이다.
소위 한4군 지역은 한반도 북부지역이 아니라 위만조선이 위치한 요서지역이며, 위만조선은 단군3조선 중 기자조선(번조선)을 멸망시킨 나라이며, 위만조선의 멸망은 고조선의 멸망과는 무관하다. 단군조선은 멸망한 것이 아니라, 단군3조선 연방이 해체되어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난립하는 열국시대로 접어 든 것 뿐이다. 그리고 요서지역의 기자조선(번조선)이 위만조선에게 망했어도 만주지역의 부여(진조선)와 마조선(한반도)은 건재했다. 이러한 단군조선사에 대한 개념정립이 아직도 국사학계는 안 되어 있다.
위만조선은 고조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나라 지역에서 굴러 들어와 권력을 찬탈한 배은망덕한 상넘 위만의 나라에 불과한 것이다. 위만조선이 망했어도 단군3조선의 부모국인 진조선은 만주지역에서 해모수의 부여로 계승되어 요하를 경계를 건재하고 있었으며, 마조선(한반도)는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침략으로 대거 이주해 온 조선유민세력으로 넘쳐 나 한반도 북부에는 최씨 낙랑국.대방국.동예.맥.옥저, 그리고 한반도 남부에는 위만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서해를 건너 들어 온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세력이 세운 마한을 상국으로 삼고 조선유민들로 구성된 진.번한 등 3한이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3한 지역에 부여에서 내려 온 부여세력에 의해서 온조나라'십제'구태나라 '백제',박혁거세의 '사로국', 그리고 흉노계 신나라가 망한 후 지나대륙에서 망명해 온 김일제 세력인 김수로의 가야가 마.진.번한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4세기 고구려를 침략한 모용선비족의 나라 전연은 고구려 북부전선에서 고구려대군4만과 전투 중에 패하여 1만명 가량의 모용선비족 기마부대가 동해안을 타고 내려와 사로국을 무너 뜨리고 신라를 개국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민족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부재나 왜곡행위는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출발한 기존의 사학계가 고대 민족사의 진실을 담고 있는 [환단고기]를 철저히 위서 취급하는데서 기인한다. [환단고기]는 신라.고려시대의 안함로.이암 선생 등이 민족사를 기록한 고서들을 묶여서 일제시대에 홍범도.신채호 등 누구나 알 수 있는 대종교(단군을 국조로 삼고 단군의 홍익인간이념을 국가이념으로 삼았다. 항일광복운동가들 대부분이 대종교인들이였다)인들이 후원을 하여 계연수 선생이 편찬한 민족정통사서로서 가장 사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있다. [환단고기]에는 고추모의 아버지가 해모수의 둘째 아들 고진의 손자인 불리지(고모수)라고 그 이름까지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어찌 고추모 아버지를 해모수라고 날조를 한다는 말인가?
KBS사극 '근초고왕'의 작가나 제작진은 왜 시청자들에게 비난을 받는가?
KBS시청자 게시판 화면자료
KBS가 사극 '근초고왕'제작과 방영을 통하여 백제사를 조명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내용전달에 있어서 최대한 역사의 뼈대를 살리면서 제작해야 하는데, 고이왕 시기에 중앙집권국가를 실현했음(삼국사기)에도 불구하고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가 중앙집권국가를 실현했다 하고, 근구수왕의 외삼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