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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김은숙을 위한 작은 음악회’.작가 김은숙 씨(52)는 지난 1982년 3월18일 “광주항쟁 유혈진압에 미국이 침묵한데 항의한다”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부미방)을 일으켰던 당시 부산지역 대학생 중 주역의 한명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돼 5년8개월의 수감생활을 한 그는 ‘김백리’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썼고, 번역 작가로도 활동했지요.작년 말 작고한 리영희 선생의 집필을 돕기도 했고,서울 평화시장에서 노동자 자녀들을 돌봐주는 ‘참 신나는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작년8월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입니다.
김 작가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작가 유시춘,통일운동가 임수경(1989년 방북)씨 등이 급히 마련한 이 작은 음악회는 지난 한세대 굴곡의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또 주로 인터넷매체와 트위터에 의해 전개된 작가후원운동의 놀라운 결과는 뉴소셜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생생한 현장사건이었기에 잠시 보고 드리고자 합니다.
고 문익환 목사와의 방북으로 널리 알려진 임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퍼져나간
김은숙 작가 이야기는 곧이어 몇몇 인터넷매체에 보도되었고,음악회 계획은 당일 한 중앙일간지에 보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날 저녁7시 녹색병원 1층 로비에서 시작된 음악회는 감동적이었습니다.여기저기서 자발적으로 찾아온 2백 여 명의 청중이 로비 임시음악당을 메웠기 때문입니다. 임씨가 작은 역할의 사회를 보긴 했지만 이날 음악회는 마치 오래전부터 잘 조직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잘 흘러갔습니다.
노래패 ‘메아리’ ‘새벽’ ‘우리나라’, 음악인 이성호 윤석민 이창학 등은 청중들의 박수와 열띤 호응 속에 80-90년대에 만들어진 운동권노래들을 불렀습니다. 김 작가를 잘 아는 고 은 시인, 소설가 윤정모 씨,이인봉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황선희 시인, 함세웅 신부,김영환 국회의원 등은 노래 사이사이 적절히 마이크를 잡고 자신과 김 작가와의 인연을 말하며 그의 쾌유를 빌었습니다.
78세의 고 은 시인이 청바지에 야구모자 차림으로 “숨은 꽃 같은 김 작가가 온몸으로 겪은 시대의 아픔이 우리를 울린다.꼭 떨쳐 일어나 다시 캄캄절벽의 불꽃이 되기를 빌고 또 빈다”고 힘주어 말할 때 청중석은 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습니다.
요즘 고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유시춘 씨는 김 작가가 사건당시 겪었던 지독한 고문의 실상을 출옥 직후 용감하게 폭로했던 일을 소개하며 “김 작가에게 진 마음의 빚이 너무 커서 꼭 그를 살려야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날의 가장 큰 감동은 뼈만 남았다고 할 만큼 말라버린 김 작가가 음악회 후반 휠체어에 의지해 음악회장으로 내려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꼭 완쾌돼서 여러분을 다시 뵙겠다”며 눈물을 쏟을 때였지만 그 직전에도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준 한순간이 있었습니다.
현존하는 최고령 항일독립운동가인 104세의 구익균 선생이 미국의 독지가가 보내온 5백 달러의 절반을 김 작가에게 드린다는 발표를 했을 때였습니다. 절반은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수요모임’에 이미 내셨다는 말씀과 함께 말이죠.
필자는 동아일보 기자이던 시절 출옥 직후의 김은숙 씨를 만나 이런저런 취재를 했고, 당시 제약이 컸던 언론 상황에서 나마 월간지 등에 그에 관한 글을 썼던 인연으로 음악회를 찾았던 참이었습니다.참, 김영환 의원은 1980년대 초 당시 시위주동으로 수배돼 피신 중이던 상황에서 우연하게 김은숙 씨 등 당시 부산지역 대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피신생활을 했던 독특한 인연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음악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트위터의 위력에 놀랐지만 특히 임씨가 김 작가를 돕자며 개설한 계좌를 연지 나흘 만에 6천만 원이 모여 김 작가 투병비용에 보탤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뿌연 황사 가득한듯한 오늘 우리네 삶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너무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배우 문성근,조 국 서울대 교수, 소설가 공지영 씨등 여러 유명인들이 후원금을 보태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후원금은 김 작가를 전혀 몰랐던 수 천 명의 트위터리안들이 몇 천원에서 2만원까지 낸 정성의 집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보며 굳이 우빨, 좌빨 언급할 분들은 없으시리라 믿습니다.돌아오는 길 내내 “은숙 언니를 세상에 알리고, 그의 삶이 결코 외롭지 않았다고 소리치고 싶었다”는 임수경 씨의 말이 떠올랐습니다.말씀도 거의 못하고 거동도 불편한 몸으로 시종 음악회 현장을 지켜주시며 때로 눈물을 훔치셨던 104세 구익균 어르신의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김은숙 후원계좌 (농협 302-0378-0560-01 임수경)
<김기만/군산대, 우석대 초빙교수/동아일보파리특파원,청와대춘추관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