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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소설 동의보감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TV사극으로 방영된“허준”은 다수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드라마와 소설은 실제와 다를 수 있는데 드라마 허준도 그중 하나다. 가령 허준은 선조 때의 명의이나 스승으로 나오는 유의태는 1백년 후의 사람이며 최고의 난치병인 나병을 치료하는 삼적대사는 가상인물이지만 허준과 동시대의 사암침법 창시자 사암도인으로써 사명대사의 수제자라 전한다.
어쨌든 시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살았던 실제 인물들이 소설과 드라마를 만나 재미있는 역사극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알려져 한류 붐을 일으킨 것은 한국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은 4,5백년전만해도 전쟁과 권력투쟁의 혼란기였고 문화도 발전하지 못한 야만적 풍습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비록 조선조 초기와 중기의 정치적 혼란기였지만 뛰어난 문인 예술가들과 허준 같은 명의가 많았다는 것은 우리역사가 훨씬 앞선 선진국가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사는 명의가 많은데 정치 권력자들은 여전히 돌팔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인가. 한때 의사는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제일 잘 나가는 직업이며 출세의 지름길로 통할만큼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한의, 양의 할 것 없이 엄청나게 배출되고 병원, 약국이 교회당만큼 많아져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인기가 시들하게 되었다. 그러나 권위 있는 큰 병원의사나 명의로 소문나던지 병원건물을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의사들은 여전히 부와 명성을 획득하고 고급관료와 정치로 진출하는데 있어 0순위가 된다.
세 가지 의사와 세 가지 인간
동서양 할 것 없이 왕정시대에는 대개 계급사회였다. 왕 귀족 평민 천민으로 대별되고 세분화하면 수십 수백 가지 계급이 나눠진다. 평등사회인 민주국가에서 계급차별이 없어졌지만 직업군에 따라 천차만별로 차별 아닌 차별사회가 존재한다.
우리의 전통사회는 사농공상과 양반 상놈으로 구분되고 직업은 바꿀 수 있어도 신분은 대대로 계승되었다. 특히 유교 성리학에서는 더 엄격히 규제해서 남녀, 출신성분에 따라 법제도를 다르게 적용해 통치했다.
보통 인간을 5종으로 나눈 국민철학자 안병욱의 에세이가 있고 9종으로 세분한 지조론의 지식인 조지훈 시인이 있다.
중국에서는 인간을 크게 구분해서 상 중 하로 나누었다.
첫째 상인(上人), 학식과 인격이 높은 학자와 승려들, 또는 최고의 예술가, 고급관료, 정치가이다.
둘째 중인(中人) 보통사람으로 농민, 상인, 기술자, 군인, 의사, 공무원이다. 현대의 중산층 시민군에 속하는 사람들로 큰 욕심 없이 직분에 만족하는 가정형, 직업적인 부류들이다.
셋째 하인(下人) 아랫사람, 종, 노예, 천민에 속하는 사람들로 피지배계층들이다. 소외되고 억눌리고 한 맺힌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인구의 3분지 2를 차지했다.
인간의 역사는 교과서대로 정해져 있지 않고 때로는 숨겨진 역사의 의미가 더 값어치 있다. 가령 나라를 망치고 반역한 양반귀족들, 폭군 전제군주 같은 악행을 일삼은 왕, 봉건영주들은 상인, 대인이 아니라 하인에 불과하며 중인계급인 허준 유의태, 탁월한 외교관 연암 박지원이 상인 대인들이다. 천민이지만 논개 계월향 매향 임꺽정 장길산 같은 민중과 시대의 우상인 사람은 상인, 대인이 아니겠는가.
의사도 세 부류가 있다. 첫째 하의(下医), 병을 잘 치료하지 못하면서 욕심이 앞서는 사람 중의(中医), 병을 능히 치료하지만 난치병이나 마음의 병까지는 치료하지 못하는 의사, 상의(上医), 대의(大医)는 명의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난치병치료와 나아가서 병든 세상을 구제하는 사람이다.
불교에서 석가모니를 가리켜 대의왕(大医王), 대법왕(大法王)이라 부른다. 중생들의 수많은 질병을 구제하므로 의술의 대왕이라 하고 세상의 혼란과 어리석음을 감로법으로 치유함으로 진리의 대왕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인도 당연히 상중하가 있다. 상인, 상급 정치인은 수신제가해서 평천하의 뜻을 품은 사람으로 공명정대하다. 이익보다 정의를 생각하고 정치개혁과 사회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며 중인, 중급정치인은 합리적이고 건전한 가치관으로 부지런히 노력하지만 가끔 실수도 하고 작은 이익을 챙기기도 하나 반성 할 줄도 안다.
하인, 하급정치인은 자신과 집안, 정당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탐욕과 권모술수의 대가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앉을자리 누울 자리도 잘 모르는 소인배정치인이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전형적인 모리배로 언제나 권력만 쥐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표변하는 냉혈한이다.
의사 법률가 성직자 정치가들이 옛날기준으로 보면 사회 지도층에 틀림없지만 사회가 혼란하고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이들 계층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민주주의사회라 하지만 특히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 같은 상위그룹의 정치인들은 의사결정에 무한책임이 있어 국민과 사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성인군자 같은 최상위의 인격자이기를 바랄 수 없어도 최소한 보통사람의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중인정치인(中人 政治人)정도는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대통령의 신뢰와 지지도는 2.30%대로 하인, 소인배 정치수준으로 전락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요즘 심심찮게 자기반성 자아비판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청와대와 내각. 여당에서 여전히 실세들이 소통을 막고 문제점을 은폐하기에 급급하지만 이미 거대한 권력의 댐에 작은 틈새가 생겼다는 것이 국민적 여론이다.
어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수십 년 전 독재정권시절에 늘 하던 말이라는 것을 권력실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의 평균치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국정을 농단하고 아직도 잘못을 모르는 것은 비극이다. 나라의 장래가 심히 우려될 만큼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국민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돌팔이 정치인들은 퇴출당해야 마땅하다.
윤소암(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