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 박사 오늘은 조식(曹植)이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글인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와 이에 대한 오질의 답글인답동아왕서(答東阿王書)를 소개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쓰여 진 정확한 시기는 알기 힘듭니다만, 오질(吳質)이 득세하고 반면 조식(曹植)은 추락하는 형국에서 쓰여 진 것은 확실합니다.
득세한 오질(吳質)이 얼마나 기고만장하게 연회석상에서 행동하였는지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람의 술자리 버릇은 고쳐지기 힘드는 법, 조식(曹植)은 이 글에서 비록 추락하는 자의 입장이기는 하나 오질(吳質)의 기고만장한 술자리 태도를 넌즈시 꼬집고, 아울러 조가현(朝歌縣)의 현령(縣令)에 만족치 못하고 중앙무대로 진출을 꾀하는 오질(吳質)에게, 고사(故事)를 들어 맡은바 소임을 먼저 완수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화기애애한 편지글이나, 이면에는 날카로운 공방이 벌어지는 명문의 편지글이어서 소개드립니다.먼저, 편지글 첫 단락에는 유명한 두 개의 고사성어가 처음으로 사용됩니다. ‘좌고우면(左顧右眄)’과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단어가 그것인데, 먼저 ‘좌고우면(左顧右眄)’은 연회석상에서 오질(吳質)이 좌우를 살펴보며 자신만만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훗날에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모습 또는 어떤 일에 대한 고려가 지나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태도를 비유하는 말로 轉用된 경우가 되겠습니다.
다음으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사자성어는 <환자신론(桓子新論)>의, ‘장안(長安)의 음악을 들은 사람은 장안(長安)을 바라보면 미소 짓게 되고, 고기 맛을 아는 자는 푸줏간을 지날 때는 입맛을 다시게 된다.(人聞長安樂,則出門向西而笑;知肉味美,對屠門而大嚼)’를 전고(典故)한 단어로서, 푸줏간 문 앞에서 크게 입을 벌리고 씹는 흉내를 내기만 하여도, 실제 고기를 먹지 않아도 그것으로 기분이 만족하다는 의미이며, ‘좋아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는 비유의 사자성어입니다.
오질(吳質)이 연회석상에서 안하무인격으로 노는 행동을, 비록 조식(曹植) 자신이 하지는 못해도 보기만 하여도 좋더라(?)라는 반어(反語)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편지글을 발췌해서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계중(季重: 오질(吳質)의 字)족하, 전일에는 평시에 관람하는 것이긴 하나, 희극(戱劇: 常調)을 볼 때 가까이 자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록 연회를 하면서 날을 마치긴 했으나 오래도록 이별하다 드물게 만났으니(別遠會稀), 쌓인 회포를 다 풀지 못 하였습니다. 연회 시 그대가 술잔을 들면 앞에서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 같고, 퉁소와 피리가 뒤에서 흥겹게 연주되는 가운데, 그 풍채를 독수리처럼 드날리니, 文章으로는 봉황이 탄복하고 武勇으로는 호랑이가 응시할 지경이라, 漢 高祖의 명신(名臣)인 소하(蕭何)나 조참(曹參)도 그대의 짝이 될 수 없고, 漢武帝의 명장(名將)인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도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左顧右眄) 어깨를 견줄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이 어찌 그대의 호기로움이 아니리오! 고기 맛을 아는 자는 푸줏간 앞을 지나가면서도 입맛을 다시는 법이니(屠門大嚼), 그 자리가 귀하고도 통쾌하였습니다. (植白:季重足下。前日雖因常調,得為密坐,雖燕飲彌日,其於別遠會稀,猶不盡其勞積也。若夫觴酌凌波於前,簫笳發音於後,足下鷹揚其體,鳳歎虎視,謂蕭曹不足儔,衛霍不足侔也。左顧右眄,謂若無人,豈非吾子壯志哉!過屠門而大嚼雖不得肉,貴且快意。) - 중략(中略) -
또한 듣건대 그대가 부임한 이래로 훌륭한 官政을 펼치고 있다 들었습니다. 대저, 구하고도 얻지 못하는 자는 있어도, 구하지 않고도 얻은 자는 없는 법. 말이 길을 잘 가지 않는 다고 진로를 바꾸고 길을 변경하는 것은 왕랑(王良)이나 백락(伯樂)같은 말의 名人들이 하는 바가 아니고(非良樂之御), 백성들을 바꾸어 가면서 통치하는 것은 초(楚)나라의 손숙오(孫叔敖)나 정(鄭)나라의 자산(子產)같은 명재상(名宰相)들이 하는 바가 아니니(非楚鄭之政), 그대는 바라건대 지금 다스리고 있는 조가현(朝歌縣)의 일만 열심히 하면 그뿐일 것입니다. 마침, 귀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지라, 구술(口述)로 使者에게 받아 적게 하니 갖추지 못한 바가 많습니다. 수일 상간에 서로 소식 전합시다.” (又聞足下在彼,自有佳政。夫求而不得者有之矣,未有不求而得者也。且改轍易行,非良樂之御;易民而治,非楚鄭之政,願足下勉之而已矣。適對嘉賓,口授不悉。往來數相聞。曹植白。)
짧은 단어들 속에 많은 의미를 담아서 격조 있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명문(名文)입니다.
이제 이러한 조식(曹植)의 편지에 대해 오질(吳質)이 보낸 답신인 <답동아왕서(答東阿王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글에서 오질(吳質)은 먼저, 연회석상에서 자신이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 부분을 조식(曹植)이 ‘좌고우면(左顧右眄)’이란 단어를 써서 비꼰데 대해 일단 사과를 합니다.
‘조가현(朝歌縣)에 돌아와 생각하니 열흘정도 정신이 흩어지듯 멍했다’,그리고 스스로가 ‘출신이 천한지라, 내뱉는 언사가 조잡하고 행동에는 격이 없다’는 정도의 말로 사과를 대신하는데, ‘대죄(大罪)’라든지 ‘사죄(死罪)’등의 용어를 쓰지 않는데서 이미 권력에서 멀어져가는 조식(曹植)에 대한 그의 대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자신의 술자리 행동을 정당화하는 글이 이어집니다.‘하지만 연회의 장관(壯觀)이 저 같은 시골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족 하였습니다’는 말로서 자신의 행동이 연회석상의 흥에 겨워 일어난 우발적인 행동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 후,이 정도의 연회를 열 위(魏)나라의 국력이니, ‘유비(劉備), 손권(孫權) 따위야 거들떠 볼 가치나 있겠습니까?’란 말로 화제를 슬쩍 돌려놓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조식(曹植)이 자신에게 조가현(朝歌縣)의 정사(政事)에만 전력하라고 충고한 부분에 대한 그의 반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회남자(淮南子)>의 고사(故事)를 들어, 궁벽한 시골인 조가현(朝歌縣: 과거 상고시대인 은(殷)나라의 수도였음)을 맡는 것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없다는 강한 어조의 말로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는데, 결국 그는 그의 말대로 후일 진위장군(振威將軍), 시중(侍中)의 벼슬을 거쳐 사마진군녹상서사(司空陳群錄尚書事) 벼슬에 올라 황제를 직접 보좌하는 위(魏)조정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 됩니다.
그의 글을 발췌하여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답동아왕서(答東阿王書)>
“보내주신 서신이 도착하여, 삼가 내려주신 은혜(惠貺(혜황))를 받잡습니다.함을 열고, 서신을 펴보니, 저를 빈틈없이 위로하고 타이르는 문체가 어찌 이리도 유려(流麗)하신지요? 대저, 태산(東岳)에 올라 본 자만이 뭇 산들이 발아래 펼쳐있음을 알 수 있는 법이고,천자(天子)를 모시는 높은 벼슬에 올라봐야 백리(百里)땅 다스리는 지위가 비천함을 알 수 있는 법. 臣이 경사(京師)에서 돌아 온 이후, 엎드려 대엿새 생각하니,열흘 동안 정신이 흩어 지고, 생각이 빠져나간 듯(精散思越), 멍하니 있었나이다.
제가 어찌 감히 더 이상의 총애를 부러워 할 것이며, 의돈(猗頓)과 같은 부유함을 사모 하리이까?실로, 개나 말과 같은 비천한 신분출신으로, 德이 얇기는 기러기 털과 같은 臣이, 출세를 하여 현무(玄武) 대궐을 거쳐, 금문(金門)을 열고, 옥당(玉堂)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굽이쳐 흐르는 연못을 바라보고 술잔을 기울이는 신분이 되었으나,출신이 천한지라 행동의 위엄은 이지러져 격이 없고, 쓰는 언사(言辭)는 조잡하기 짝이 없나이다... (質白:信到,奉所惠貺。發函伸紙,是何文采之巨麗,而慰喻之綢繆乎!夫登東嶽者,然後知眾山之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