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우편물을 잔뜩 실은 트럭을 몰고 나와 인터넷 카페 앞에 세웠습니다. 첫 배달 하기 전에 여유롭게 커피한잔 하는 것은 제 삶이 제게 주는 특권과도 같은 것. 여기서 오늘 하루를 맞는 마음을 가다듬고, 궁금한 세상을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잠깐 휘이 둘러보고 갑니다. 4월의 아침인데도 오늘 집을 나설 때는 차 유리에 성에가 끼어 있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썰렁하니 날씨까지 이모양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편 차량을 몰고 간선도로로 들어서는데, 겁 없게 길 위를 낮게 날아다니며 사랑을 나누는 벌새 두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험하게 돌아가도, 자연의 법칙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분홍색 벚꽃들이 수를 놓고 있는 거리 위에서 눈에 띌까말까한 조그만 벌새들이 날개를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서로를 희롱하는 것을 잠깐 지켜보고 있자니 그냥 미소만 흐르더군요. 전에 벌새 둥지를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새끼손톱만큼이나 작은 그 알에서 또다른 벌새들이 태어나 꿀을 마시며 살아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거기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다 들어 있는 듯 했습니다.
길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돌아다닐 수 있는데, 모니터를 바라보며 느끼는 세상은 좀 황당합니다. 한나라당의 김무성 원내대표가 "방사능 불안을 조성하는 불순 세력" 운운했더군요.
미안하지만, 방사능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정확히 얼마나 무서운건지를 우리가 자세히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쌓일 수도 있고, 항상 안전 안전을 외쳐 왔지만 이런 사건이 하나 일어나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뒤늦게들 깨닫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 빗속에 우리가 '잘 모르는 수준의, 어쨌든 그 존재는 분명한' 양의 방사능이 섞여 내린다고 할 때, 애 기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정보를 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방사능이란 것이 의외로 알면 알수록 그것이 상당히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그리고 거기에 대해 확실한 대책이란 것이 뭔지도 잘 모를 때,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 거라는 건 분명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다가 '불안 조성 불순 세력'하면서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을 반정부 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이 집권당 대표의 올바른 발언일까요?
하다못해 "불안한 건 알지만... " 하는 식으로 국민을 먼저 다독인 다음에 설득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 아닙니까? 그런데 다짜고짜 여기에 색깔론을 입힌다는 것은 도대체 민심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일들마저도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몰아 색깔론으로 다가올 선거들에 유리한 입장을 조성해보겠다는 '쓸데없는' 노력의 일환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 기가 막힐 뿐입니다만.
물론 '경제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원전을 최대한 조성하려는 정부여당의 입장에서 원자력 발전의 위해성이 강조되는 것은 정책 운용에 불편한 일이긴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각들을 바꾸기 위해 색깔론까지 동원한다? 이건 아닌 것 같네요.
그리고 원자력발전이 마치 경제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경제성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로부터 상당히 먼 세대의,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후세에까지 물려줘야 하는 방사성 폐기물의 문제도 그렇고, 건설비도 그렇고, 운용비 역시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합산하지 않은 원전운영 비용은 허구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폐기할 수 있는 것도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지, 고준위 폐기물들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보듯 어떻게 처리하지 못해 그냥 원전 안에 '모셔놓고' 있었던 것이 현실입니다.
어제 또 한번의 강력한 여진이 일어나 다시 핵공포에 빠진 일본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 일본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국가'가 가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국민들의 걱정은 당연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방사능은 절대로 날아올 수 없다'고 주장하던 정부가 방사능이 곳곳에서 발견되자 '그것은 미량'이라고 우기기만 하며 말바꾸기를 하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믿어라. 안 믿으면 빨갱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결국 그들의 무능과 더불어 '책임 안 지기'와 '떠넘기기' 태도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나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들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불신의 방사능"을 유출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피폭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불신의 방사능 피폭자를 치료하는 방법은 투명한 정보의 공개,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책임을 지려는 정부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오래전부터 꽤 '고준위'의 불신의 방사능에 노출돼 왔고, 김무성씨의 이번 이런 발언은 그것을 국민의 감정을 '불신의 핵폭탄'으로 돌려버릴 수 있는 뇌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