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한번 참 보기 드물게 깍듯하다 예상대로다. 민주당이 김해에서 국민참여당에게 통 큰 양보를 하기로 결단했다는 소식이다. 말이 양보지 실제로는 ‘할양’이다. 할양이란 패전국이나 약소국가가 승전국이나 강대국에게 영토의 일부를 더 이상의 저항과, 아무런 조건 없이 떼어주는 것을 뜻한다.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결과적으로 통 크게 국권을 양보함으로써 생겨난 사건이 국사책에 기록된 ‘한일합방’이었다.
김해가 누구의 영역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이 ‘민주화의 성지’라고 찬미한 어느 정신 나간 진보언론의 기사를 접하고 나는 구역질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냥 코웃음만 쳤을 뿐이다. 김해 같은 곳이 민주화의 성지라면 앞으로 너희들이 그 빌어먹을 민주화의 성지 다 가져가라. 대신에 당신네가 명심할 게 있다. 이제는 알량하기 짝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가 돼버린 민주화성지란 영광스런 이름을 유지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즉 평소에는 단 한 마디의 자기주장도 하지 말고 집구석에 얌전하게 틀어박혀 있다가 선거일이 되면 텔레비전 방송국 카메라나, 신문사 사진기자들 눈에 잘 뛰지 않게끔 아침 일찌감치, 또는 투표시간 마감 직전에 조용히 투표장에 나타나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가 지지하라고 낙점한 후보자를 영혼 없는 로봇처럼 찍어주는 일이 그것이다. 주체성 상실한, 자의식 마비된 유순하고 고분고분한 국민과 대중만이 강남좌파들과 된장진보들로부터 ‘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치하를 받을 수 있음을 잠시도 잊지 마시기 바란다.
1938년의 뮌헨 위기 당시,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를 병합하려고 획책하면서 내세웠던 논리가 그곳에 다수의 독일계 주민들이 거주한다는 거였다. 히틀러의 그와 같은 궤변에 굴복한 영국과 프랑스 등의 서구열강은 체코가 독일군의 침략에 대비해 오랫동안 공들여 조성해놓은 방어시설이 밀집해 있던 수데텐을 나치독일한테 통 크게 양보하고 말았다.
이후의 역사가 증명한 바와 같이 처음에는 게르만족이 주민의 대다수를 구성하던 지역을 획득하는 데만 만족할 것처럼 공언하던 제3제국의 독재자는 독일인이 소수에 지나지 않는 지역들까지 탐을 내더니, 결국에는 독일인이 전연 살지 않는 타국의 광활한 영토로마저 더럽고 음험한 마수를 뻗치기에 이른다.
오늘의 유시민은 경상도에서만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내일의 유시민은 경상도 태생의 사람들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구들에서의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모레의 유시민은 경상도 출신들이 소수자를 이룬 지방에서의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그 이후의 유시민은 경상도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는 곳에서도 민주당이 양보해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경상도 사람이 전연 살지 않는 땅에서도 경상도 사람이 주인 행세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영남 인종주의자들의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동유럽에서 유대인은 물론이고 슬라브 민족까지 깡그리 절멸시키고서, 거기에다가 아리아인의 거대한 ‘생활권(Lebensraum)’을 만들기를 꿈꿨듯이 말이다.
유시민의 경상도 천년왕국 역시 히틀러의 게르만 천년왕국만큼이나 그들 관점에서 하등 인간으로 간주되는 타자들의 철저한 희생을 필요로 한다. 문제의 타자들이 히틀러의 경우에는 이민족이었다면, 유시민의 경우에는 호남인을 위시한 다른 지역의 민중들을 가리키리라.
뮌헨 위기 때 무솔리니가 중재자를 자임하면서 히틀러에게 빌붙어 자기의 잇속을 챙겼듯이, 그간 민주당과 유시민 세력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거듭하며 객관적 중립을 자처해오던 문재인과 백원우 부류의 친노 잔당들은 민주당 측의 이른바 아름다운 양보를 종용하면서 유시민에게 은근슬쩍 들러붙어 자신들의 전리품을 수확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뮌헨에서 한 배를 타게 됐듯이, 유시민과 친노직계들은 김해에서 완벽한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어쩌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일제국이 주도하는 20세기 구라파의 신질서를 구축하고자 제1차 세계대전을 도발한 황제 빌헬름 2세에 비견될지도 모른다. 유시민과 그 추종자들은 오로지 독일인들만 생육하고 번성하는 유럽을 건설하고자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총통과 나치스 당원들에 비견될 수가 있다.
YS와 盧는 상식적 수준과 범위 안에서 이해가 가능한, 전통적 의미의 패권주의자였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싸울 수도, 거래할 수도 있었다. 유시민 부족은 문자 그대로의 전형적인 인종주의자에 가깝다. 상대편으로서는 그들과의 어떠한 협상과 타협도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제네바 협약에 규정된 따위의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조차 끼어들 틈이 없다.
마침 오늘 머리를 깎으려던 참이었다. 우리와 저들 중에서 누구 하나가 대한민국 정치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져야만 끝날 비장하면서도 비극적인 인종전쟁이 시작되려는 지금, 나는 문득 깍두기머리를 하고 싶어 졌다. 전쟁이다! 출처:수복(본 칼럼은 유료칼럼이므로 무단전재 퍼가기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