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고3 학생들이 서울대학교 지망생이 아니면 입시에서 국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국내 대학중 서울대가 유일하게 국사를 입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 3교실에서는 국사 과목을 개설해도 수강을 기피해 역사교육 부실화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교과부는 이 같은 국사 기피현상을 막기 위해 각 대학에 입시과목에서 국사를 필수화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입학관리팀 관계자는 "각 대학이 최근 제출한 2012학년도 입학전형에서 국사가 지난해에 비해 강화된 학교는 없었다"며 "대교협에서 강화를 요청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대학입시.공무원 시험 등 각종 시험에서 필수과목으로 선정되야 하는 민족사(국사)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정의하기를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라고 말했다. '아'란 민족혼으로써 뿌리와 정체성을 의미한다. 뿌리와 정체성은 역사의식에서 나온다. 뿌리와 정체성은 현재 존재하는 우리의 DNA이며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를 여는 창조적 에너지의 근원이다. 따라서 민족사를 바로 세워야 하는 당위성과 정당성이 거기에 있으며, 우리의 나라와 민족을 빼앗고 망하게 하고자 하는 외세나 내부의 이적세력은 민족사를 선택과목으로 하여 교육하지 않거나 날조하기 마련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의 3대 천재로 알려진 만큼 두뇌가 뛰어나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국권이 침탈당해 가는 과정에서 더 이상 성균관에서 벼슬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성균관을 나와 민족의식을 심어 주는 언론인으로 적극 활동했고, 을지문덕 등의 역사소설을 쓰기도 하고 여성인권에도 관심을 가지고 우리나라 최초 여성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만주로 건너가 고구려 유적들을 답사하고 북경대학 등 지나대학 곳곳의 도서관에서 고서들을 찾아 우리 해민족사를 바로 세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기술이 100%정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오늘날처럼 자료와 정보가 풍부한 인터넷 시대가 아닌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민족혼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자신을 민족제단에 바치신 분이셨다. 항일광복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무장투쟁노선을 지향한 김원봉의 조선의열단 고문으로 조선혁명선언문을 직접 짓기도 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하다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자가 나라를 되찾더라도 통치를 미국에게 맡기자는 위임통치안을 제기하자,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는데 이승만은 없는 나라까지 팔아 먹는 자라면서 탄핵안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당시 임시정부는 김구도 있고 여운형도 있고 신채호도 있는데, 어떻게 이승만같은 친미사대주의자를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는지 한심한 자들이였다는 생각이다.
고로 역사학의 목적이란 단순한 유희와 재미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연구와 역사기술을 통하여 국가의 국민성을 황폐화시키고 국가간의 분쟁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역사의 날조와 왜곡을 분쇄함과 동시에 국가간 민족간 인류간에 분열되고 갈등하고 대립하는 현재의 근원을 찾아 원인분석을 하고 다시 통합을 위하여 교류하고 협력함으로써 국가간 민족간 인류간의 대동홍익 평화세계를 실현하기 위함이라 할 것이다.
단군조선연방이 붕괴된 이래로 분열되어 온 해민족도 마고의 율려(대동세계)문명을 계승하여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이념의 평화적 가치관으로 3천여년간 나라를 유지한 환국과 2천여년씩 장구하게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부여)으로 돌아가 해민족 일심동체를 실현하는 일이 오늘을 사는 해민족의 역사적 사명이라 할 것이다.
법 이전의 양심(빛=율려=하나님)을 회복하여 차별없고 독점이 없이 더불어 나누며 신명나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와 세계를 해민족의 홍익인간이념으로 만들어 보자! 인류만민의 눈물과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개인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와 지역이기주의로 독식하려는 탐욕때문이며.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며 죽이는 탐욕은 민족과 인류의 악성 종양의 근원이다. 따라서 인류의 양심세력은 만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나라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차별하고 독점하려는 탐욕스러운 유전인자들은 생존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뿌리가 깊지 못하면 나무가 굳건히 서지 못하고 뼈대가 없거나 약하면 바로 서지 못한다!
해민족의 주체사관 정립을 위하여..
지나국의 수도는 보통 북경.서경.남경이라 부르고 일본수도는 동경이라 부른다, 반면에 지나사와 일본의 문명과 역사의 뿌리가 되는 해민족의 본향 해머리땅은 서울.한성이라 부른다. 1만년을 전후하여 해머리땅이 문명과 역사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해머리땅은 고대로부터 땅이 비옥하고 물이 맑은 무궁화 금수강산 에덴동산 설화의 고향이였다. 문명은 천박한 동토나 사막에서는 결코 발달할 수 없다. 오직 따뜻한 기후대에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어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으면 문명이 일찍 발달하기 마련이다. 해머리땅 중에서도 가장 비옥하고 먹을 거리가 풍부한 호남지역에 그러한 요건에 해당된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높기 마련이다. 고인돌 하나 만드는데 수백에서 수천명의 인원이 필요하다는데 한반도지역은 그러한 고인돌이 수만기가 산재해 있고 호남지역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당시 해머리땅이 비옥하여 사람살기가 제일 좋았던 만큼 세계 최고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해머리땅에 인구밀도가 높다 보니 물이 차면 넘치듯이 자꾸 북쪽 지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으며 백두산.압록강지역이나 송화강.흑룡강.아무르강 지역에서 문명을 발달시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남해 남방식 고인돌양식을 변형시킨 만주지역의 피라미드나 초원지역의 적석목곽분 양식이 그것을 말해 준다. 해머리땅에서 만주로 이주한 해민족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지배하는 초원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고로 슈메르.아리안 등 중동.유럽문명을 건설하고 영어 등 인도-유럽어족의 주인이였던 초원민족의 선조들 또한 해머리땅에서 이주해 간 해민족임을 알아야 한다. 서양의 양심적인 인류학자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인류문화사적인 내용일 것이다.
고로 민족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해민족사의 뼈대를 바로 잡고 역사를 전개해야지 일부 재야 역사매니아들처럼 지나대륙이나 유럽에서 우리 해민족이 이주해 온 것인양 출발점을 잡게 되면 이치적으로도 어불성설이거니와 뿌리를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