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의 상황을 본격적으로 밀착해서 탐방한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한 까닭에 이번의 답사 보고는 가벼운 단상 정도로 규정해주시기 바란다. 우선적으로 느낀 바는 오는 4월 27일(水)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분당을’ 지역이 서울에서 참 멀다는 거였다. 나는 웬만해서는 버스를 타지 않는 성격인 터라 지하철을 이용해 갔다 왔는데 지하철(전철) 1구역 표준요금인 900원을 기준으로 출발지인 노량진에서 분당선 ‘정자역’까지는 500원이 더 나왔다. 정자역에서 다시 출발해 사무실 근처인 효창공원역에 지하철을 내리자 개찰구에 잔액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분당에서 용산까지 무려 1,500원이 든 것이다.
그곳의 판세 및 표심과 관련된 여론조사는 이미 여러 기관과 단체들에서 숱하게 실시해 발표됐으므로 굳이 나까지 나서서 그러한 조사 결과들을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게다. 그 대신 나는 언론매체들에 실리는 수치들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몇 가지 일상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풍경들을 묘사해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첫째는 수도권의 여타 지역을 통과하는 노선들과는 다르게 분당선에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노인 승객들이 유독 많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좀 더 상징적 함의를 띨 것 같다. 정자역 3번 출구 앞에 버스정류장이 설치돼 있다. 정류장 언저리에 폐지뭉치가 쌓여 있었다. 꽤 오랫동안 방치된 듯했다. 다른 동네에서는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 사이에서 격렬한 몸싸움마저 벌어질 지경으로 폐지수거 경쟁이 치열하다. 허나 이곳에서는 폐지 주워가는 어르신들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당장 폐지를 주워 모아 부족한 용돈을 벌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이 드물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오늘 정자역 부근에서 만난,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진 어느 선배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하소연했다. “공 선생, 여기는 옥탑방이나 반지하는 물론이고,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유권자도 별로 없는 것 같아.”
‘맨땅에 헤딩’이라는 비유적 표현이 있다. 그런데 맨땅도 모자라 땅 위에다가 소주병 깨뜨리고 대못까지 박아놓은 곳이 분당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다 대고 박치기를 하라는데, 또 하겠다는데….
분당이 손학규 씨에게 사지(死地)가 되리라는 예측은 이 모든 정황들에도 불구하고 지금 단계에서는 너무나 섣부른 예단이리라. 싸움이란 본디 상대적이기 마련이고, 손학규 씨의 경쟁자로 출사표를 던질 예정인 강재섭 씨 자체가 워낙 문제가 많은 인물인 이유에서다. 생계형이건, 확신범이건 간에 강재섭 씨를 일단은 보수라고 인정해주자. 핵심은 강재섭의 보수는 천정배의 진보만큼이나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하게 보인다는 거다. 즉 강재섭이야말로 전형적인 ‘불안한 보수’인 셈이다.
더군다나 강재섭씨가 손학규 씨를 철새라고, 기회주의자라고 마냥 비판하기도 어려운 것이 손학규 씨는 정당을 옮겨 다닌 반면에 강재섭 씨는 사람을 옮겨 다닌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왕지사 말이 나온 김에 내가 그동안 꾸준히 관찰해 갈무리해온
‘강재섭 3종 세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박철언의 ‘재섭이가?’
박철언 씨의 회고록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을 쭉 읽어보면 박철언이 김영삼 전 대통령 다음으로 나쁘게 평가하는 정치인이 강재섭 씨임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다. 강재섭이 얼마나 모질게 뒤통수를 쳤으면 산전수전 다 겪고, 머리 좋기로 소문난 박철언조차 강재섭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소식에 말문이 막힌 나머지 오직 외마디 탄식만을 터뜨렸겠는가? “재섭이가?”
2) 박사모의 강재섭 검찰 고발
강재섭 씨를 한나라당 당대표에 앉혀준 사람이 박근혜 씨였다. 기막힌 역설은 이명박 씨가 박근혜 씨를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기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사람 또한 다름 아닌 강재섭 씨라는 것이다. 사람을 소수점 이하로 나누는 위헌적 계산법을 편법으로 적용한 덕분에 이명박 씨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고, 마침내 대통령직까지 거머쥐게 된다. 분노한 박사모 회원들은 급기야 강재섭 씨를 결국 검찰에 고발하고 만다. 검찰은 그 피 끓고 애끓는 고발을 당연히 묵살했고.
인간을 소수점 이하로 나눠서 계산하는 식인종들이나 할 법한 엽기적 셈법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으로부터 1년 후인 2007년 여름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의 당대표 선거에서 또다시 채택되고, 그 수혜자는 친노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세균 씨였다.
3) 강안남자 조철봉 섹드립
강재섭 씨는 문화일보에 장기간 게재됐던 이원호의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 조철봉이 “요즘에는 왜 안 하느냐?”고 푸념한 적이 있다. 조철봉이 뭘 안 했기에 강재섭씨가 몹시 서운하고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련다. 잘못하면 선거법에 저촉될 위험성이 있어서이다.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고학력 중산층 주부들이 많이 거주하는 분당에서 강재섭이 얼마나 ‘강안남자’인지를 설명해주면 어떤 반응들이 돌아올까? 궁금하면서도 기대가 크다.
유시민 씨에 관한 언급을 역시나 빼놓을 수는 없겠다. 강재섭 씨 사무실에서 그러 멀지 않은 거리에 국민참여당 소속으로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사무실이 위치해 있었다. 사무실이 들어선 건물의 벽에다가 후보의 이름을 적어놓은 플래카드를 걸어놨는데 정말 엄청 크더라. 펼침막 크기만큼은 대선후보 급이었다. 당선이 목적인지, 아니면 민주당을 비롯한 나머지 야당들과의 거래가 목적인지 정확한 속내야 파악할 방법이 없지만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저토록 거창하고 요란하게 소위 앵벌이나 이른바 삥뜯기를 벌이는 집단은 국참당 사람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란 점이다.
출처:수복(본 칼럼은 유료칼럼이므로 무단전재 퍼가기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