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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국방개혁 문제를 놓고 말이 많은 듯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날짜를 따서 '국방개혁 307'이라고 불리우는 이 안에서 중요한 사안은 장성 수를 줄인다는 것, 그리고 참모총장들에게 군령권을 넘긴다는 것 등입니다. 또 군 체제가 육해공군의 경계를 넘어선 '통합군'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이 계획의 중점 사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23일 예비역 장성들을 초청해 이 계획에 대해 설명하자 예비역 장성들이 모두 이를 나무랐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욱 심각한 것은, 청와대에서 28일 "'국방개혁 307계획'에 반대하거나 반발하는 현역들이 나올 경우 항명(抗命)으로 간주, 인사 조치까지 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즉, 청와대에서는 이미 이 계획을 그대로 밀고 추진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먹을 것도 없는 예비역'들이 이를 드러내놓고 반대하고 있을까요?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예비역 장성들은 "문민통제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들고 있습니다. 문민통제라는 것은 국방부장관이 군령권을 지닌다는 것을 뜻하지요. 이 문민 우위의 원칙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미국처럼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상대적으로 군인들의 '흑심'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애초에 이를 하나의 원칙으로 세워 왔습니다. 결국 문민인 국방부장관의 통제 하에 군대를 가진 실질적 역량인 군 장성들이 '반란'을 꿈꾸는 것을 애초부터 이 장치로 막아 놓는 것이었지요.
군의 문민 통제권이라는 것은 그저 상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같은 역사가 오래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진통을 겪어 세워 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예비역 장성들이 12.12 사태때 영관급 장교였을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왜 굳이 '문민통치 원칙에 어긋남'을 이유로 들어 이 국방계획에 반대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군이 직접 정치에 개입한 역사'를 알고, 또 실제로 '문민통치 아래서의 군'을 겪어본 사람들입니다. 즉 문민통제야말로 군이 진정한 군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담보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같은 예비역 장군들의 움직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밥그릇 싸움할 생각이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인즉슨 군이 통합군 체제로 간다면 해군과 공군이 육군에게 밀려 기득권을 잃을 것이고, 또 육군의 경우 15%의 장성이 줄을 경우 '밥그릇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문민우위의 법칙을 느닷없이 뒤집으려 하는 지금 정권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군 개혁의 이유는 지휘체계를 단순명료하게 만들어 유사시에 빨리 대처할 수 있는 강군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군이 그런 강군이 아니었습니까? 지난 두 정권 당시 우리 군의 사기는 두 번의 실전(연평해전)의 승리에서 보여지듯 충천했었습니다. 군에 대한 배려와 사기 진작을 위한 인센티브들도 그때 더 많았고, 군 자체도 훨씬 효율적으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 승리의 자신감이 바탕이 되어 우리는 그들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것이 더 쉬웠고,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대북 유화정책도 우리가 그런 강군을 가지고 있으니 유사시엔 적을 말 그대로 초전에 박살내는 것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권 들어 군이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휘체계의 문제일까요? 이 허둥지둥해보이는 대처며 떨어지는 순발력이 군 자체의 문제일까요? '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오히려 그것은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허둥지둥하고 제대로 갈 방향도 못잡아준 지도부의 문제가 아닐까요?
하긴 지금의 정치 집단보다는 군이 차라리 더 신뢰가 갑니다. 군의 일사불란한 명령체계의 집행은 지휘부의 엄정함에서부터 시작되긴 할 겁니다. 문제는 군 지휘부라고 할 수 있는, 통수권자와 그의 수족들이 모두 군 미필이라는데서 '이들이 추진하는 개혁'이란 것이 신뢰가 그만큼 가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육군참모총장, 그리고 한국군에서 가장 핵심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3군사령관 등의 주요 보직을 모두 '영포회'라는 라인이 잡고 있다는 겁니다. 잘 알려져있듯 영포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육참총장이 군령권까지 가질 수 있는 개혁을 추진한다면, '군사정권 시절을 거쳐 문민통제 아래서 참군인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에겐 이것이 어떻게 비칠까요?
통합군의 가장 무서운 점은 각군의 모든 정보를 말 그대로 정권과 가까운 한 사람이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는 과거 이런 '장군님'을 한번 가져본적이 있지요(그리고 그 장군님은 나중에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시고 스스로 대관식을 가지셨지요).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예비역 장성들은 '군인의 정치세력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군인으로서 가선 안 될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셨기에, 저렇게 '문민통제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선 임기가 끝나면 전임 대통령처럼 낙향을 결정하실까요? 즉, 노무현 대통령의 뒤를 밟아가실까요?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밟아가실까요? 아니면 전두환 대통령의 뒤를 밟아가실까요?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자신의 '퇴임 준비'를 어떻게 하고 계실까요? 저는 그게 참 궁금합니다. 책도 읽고 쓰시고, 여행도 좀 다니시고, 그러시겠지요? 저는 그 분이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비역 장성들께서 안심하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은퇴생활을 즐기실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자꾸 이렇게 '문민통제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할 때, 저는 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또는 배나무 아래서 갓끈 매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끈 매지 말라는 속담도 생각나게 되는지요. 그리고 많은 군 선배들이 이런저런 고언으로 충언하시는데도 여기에 대해 말하면 항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강변하는데, 그것보다는 이 문제에 대해 정말 오픈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괜히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속담까지 떠올리게 만드는 것 보다는. (아, 그리고 보니 '그 분'께는 '군 선배' 가 없으시네요.)
자꾸 이런 문제가 들먹거려질 때마다, 저는 '친위쿠데타'란 말만 떠올리게 되는데, 그건 아무래도 역사에 빚진 저의 채무의식이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란 말에 준할 수 있는 괜한 기우겠지요, 설마.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