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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시대가 사람들을 짓누르는 것은 그저 개인들의 일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항공사나 운송회사들은 지금 피를 말리는 심정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뒤늦게 카다피 잡기에 나선 미국의 속내 역시 '에너지의 원활한 수급'이란 목적이 없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미국에 밉보일 대로 밉보인 우고 차베즈 베네주엘라 대통령이 늘 내놨던 카드 중 하나가 "그래? 그럼 나 기름 중국에 팔 거야"였던 것도, 미국에서 사용하는 유류의 11% 가량을 공급하고 있는 그들의 입장을 반영합니다.
사실 베네주엘라의 입장에서는 미국은 자기 나라에서 생산되는 유류의 60%를 수입해가는 고객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중국에 석유 수출' 카드를 빼들고 나설 수 있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중동으로부터의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결국 캐나다와 베네주엘라 등 미주 국가들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여기에 2009 년 개헌으로 인해 차베즈가 결국 종신집권의 길을 터 놨으니, 미국으로서는 이래저래 골치아픈 상황이긴 할 겁니다).
석유가 없는 현대 문명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일상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석유 정제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들 - 그냥 쉽게 말해서 플라스틱과 비닐로 대표되는 - 인데다가,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석유를 대체할만한 에너지원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번 일본의 원전 사태로 인해 앞으로는 천연적이며 재생산 가능한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들이 더 적극적으로 변하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야말로 지금으로서는 가장 확실한 에너지원인 셈입니다. 따라서 유가의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기름값이 올라도 우리가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출퇴근 비용이 올라가면 그것을 공공 교통을 이용한다던가, 직장과의 거리가 가까운 경우 자전거 같은 대체 통근수단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회의 몇몇 부분에선 절대로 그것이 대체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국방의 경우엔 그것이 더욱 심각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엊그제 해경과 해군이 유류 절약을 위해 배에 채워져 있던 밸러스트 탱크의 물을 빼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에 해경이나 해군의 작전 지역도 줄이고, 급가속도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말 그대로 아연 실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빌미삼아 해군의 증강을 외쳤다는 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군 자체의 특성상, 육해공군 3군중에서 오히려 육군의 유류 소비가 가장 적습니다. 항공기나 함정은 기름 없으면 말 그대로 '꼼짝 마라'인 셈이지요. '발품이라도 뛸 수 있는 육군'과는 달리 해.공군의 경우는 기름을 안 쓸래야 안 쓸수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해군, 그리고 어떻게 보면 미국의 코스트 가드처럼 '늘 작전을 해야 하는', 그것도 민간부문과 군사부문을 동시에 작전해야 하는 해경 같은 경우 급가속을 하지 말고, 경비 구역을 줄여가면서까지 기름을 아껴야 한다? 글쎄요. 예산이 빠듯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맞는 일일까요? 예산을 쓸 데 써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고, 과거 연평 해전 등에서 보듯 바다에서의 남북간 군사력 충돌은 '상존하고 있는 위협'입니다. 이뿐 아니라 중국의 불법 조업으로 인해 어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해군과 해경의 작전은 그냥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일본의 해산물들이 방사능 오염의 염려로 인해 서해산의 해산물이 앞으로 '상대적으로' 각광받게 될 것이 분명한데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역시 늘어날 것이 뻔하고, 이런 상황에서 해경의 작전 자체를 줄인다는 것은 경제 주권의 포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해경이나 해군의 배에서 밸러스트 탱크에서 물을 빼 무게를 낮추라고 했다는 것인데,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밸러스트 탱크에서 물을 뺀다는 것은 결국 배의 안정성을 담보로 해서 유류를 아끼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바다는 육지와 다릅니다. 언제든지 '비상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고, 그 비상 상황이 닥칠 경우 어떤 사고가 일어나게 될 지 우리는 모릅니다. 결국, 천안함 같은 비극이 다시한번 발생하고 나서야 그제서 정신 차리게 될런지, 저는 그것도 의문이 생깁니다.
아무튼, 4대강 개발 같은 데엔 국민과의 협의 없이 예산을 마구 투하하면서, 정작 국민들의 기본권인 복지나 국방 같은 곳에 들어갈 예산들엔 인색한 이 정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요지경 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우기 국방에 관한 문제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런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달려들만한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가 이 일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안 갑니다. 어쩌면, 지난번 장자연 관련 문건을 살짝 보여주었다가 다시 거둬들임으로서 이 정권이 박근혜 쪽에 줄서기 시작한 조선일보 길들이기에 성공했다는 것을 이런 그들의 어정쩡함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예, 물론 아낄 건 아껴야죠. 그러나 4대강 땅파기 같은 데서 예산을 아껴 군 유지 및 사기진작에 사용할 생각은 안 하고 말단 병사들의 훈련강화 같은 매우 아마추어같은 발상으로 강군을 육성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냥 한숨 나오는 일들 뿐입니다.
비교를 하지 않으려 해도, 이전 정권에서 보여주었던 군 예산 및 정책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역대 정권 중 군 관련 예산을 가장 많이 삭감한 것이 바로 이 정권이라는 사실도, 이들의 국방에 대한 개념이란 것이 실천이 아닌 '입으로 때우기' 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