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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도 공항이나 항만에서 일본 발 화물이나 여객들로부터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제논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제논은 상식 짧은 제가 알기에도 절대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고, 지난번에 북한의 핵 실험 이후에도 제일 먼저 핵실험의 증거로서 제시됐던 것이 제논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방사성 물질이고, 따라서 일본 발전소의 상태가 분명히 부분적 멜트다운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곳에서도 그 문제 때문에 지금 천천히 생활의 패턴들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있기 전, 시애틀 사람들은 그냥 비가 오면 맞고 다녔습니다. 원체 비가 많이 오지만, 또 늦가을부터 늦봄까지는 날씨가 비가 왔다가 해가 났다 하면서 왔다갔다하는 도시라 우산을 들고다니는 것 자체가 거추장스러운 일이어서 사람들은 우산 대신에 커피잔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 우울한 분위기를 지우려 커피를 많이 마시다보니 커피 자체가 일상에서 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고, 그러다보니 커피 문화가 독특하게 형성이 됐고, 스타벅스나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 같은 브랜드들도 이곳에서 생겨나게 된 거지요. 그러나, 지금 시애틀 사람들의 손엔 우산이 들려 있습니다.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 일상을 바꿔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친한 벗이 전화를 해선, 우체부이기 때문에 바깥에서 많이 걷는 저도 반드시 비 오면 우비를 입어야 한다고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방사능이 이미 제트기류를 타고 북반구를 돌아 버린 상황에서 여기라고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도 그말 듣고는 찜찜해서 그동안 입지 않던 후드를 다 꺼내 입었습니다. 가끔 팔이 간질간질거리거나 하면 평소보다 많이 신경쓰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말 이번 사태는 완전히 생활의 방식을 바꿔버리고 만 셈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여러가지가 바뀔테지만, 우선 화석연료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일단 핵발전의 위험성이 드러나면서 긍정적으로 바뀔 테고, 이로 인해 화석연료의 가격은 지금보다 더 천정부지로 오를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즉 배럴당 2백달러 시대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게 됐다는 것이지요.
이미 오늘 아침, 저는 제 차에 주유를 하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한 두어달 전만 하더라도 13갤런 정도가 들어가는 제 차엔 풀탱크를 채울 경우 30달러가 조금 넘게 나왔는데, 지금은 쉽게 50달러 정도가 듭니다. 핵발전이 점점 인기 없어지는 상황이 되면서 이를 대체할 에너지를 찾는 것이 어떤 대세가 될 것이라는 거죠. 그만큼 인간은 사실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란 것이 드러나는 셈입니다.
여러가지로 우리는 지금 대체에너지를 찾아야만 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 무려 반감기가 5만년 가까이 된다는 그런 식의 방사성 물질들이 이렇게 유출되어 우리 뿐 아니라 정말 먼먼 훗날에 이 땅 위에서 살게 될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새로운 대체에너지원을 찾기는 찾아야 할 형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 다 크지도 못한, 판단력 흐린 어린 아이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핵의 이용은 우리에겐 느닷없이 우리 손에 주어진 알라딘의 램프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램프를 비볐고, 거기서 나온 거인 지니를 만나게 된 셈입니다. 지금까지 램프의 거인은 마치 주인의 말에 고분고분 순응하는 것처럼 보여졌지만, 사실 우리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던 것이지요.
지니가 그 마력으로 주인의 말을 항상 잘 들어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때로 이렇게 그 지니의 힘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때, 그것이 어떤 식의 위기로, 또는 비극으로 나타나는지 이번 사태는 극명하게 보여준 셈입니다. 아울러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결국 계속되는 자연의 파괴를 가져오고, 또 이번처럼 생태계 전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지경까지 올 수 있을 정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뭔가 핵을 대체하고, 그러면서도 보다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을 찾아내는 데 함께 지혜와 힘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항상 그렇듯, 재앙도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늘 우리는 '이건 인재(人災)'라는 말을 정말 사고가 날 때마다 달고 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수많은 인재(人材)들이 있어서 이런 상황들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단초들을 찾아내어 왔습니다.
하물며 인터넷으로 세계가 집단 지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이 때, 보다 나은 방법들을 찾아내고 공유하기엔,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결국 인간은 재앙의 근원이지만, 희망의 근원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긍정적인 점들을 믿으며, 우리의 지혜를 함께 모아나가야 할 때입니다.
시애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