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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를 소개드리겠습니다.먼저, <한정부(閒情賦)>다, <낙신부(洛神賦)>다 할 때, ‘부(賦)’가 무슨 말인지 궁금하신 분이 있으실 줄 압니다. 漢文의 정의에 의하면, ‘시(詩)’란 ‘가송(歌誦)’, 즉 노래가 가능한 것이고,‘부(賦)’란 ‘낭송(朗誦)’이 가능한 것이다 라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부(賦)’란 운문(韻文)과 산문(散文)의 중간형태라고도 합니다.그러나, 이것은 형태적 정의이고, 그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면 ‘부(賦)’의 원형(原形)은,‘사(辭)’, 즉 ‘초사(楚辭)’입니다. ‘초사(楚辭)’는 ‘초가(楚歌)’, 즉 楚나라 노래의 가사입니다.
남방지방인 楚나라의 자유분방한 민간의 전승노래가 노래곡조는 사라지고 가사만 남은 것이죠.한초전(漢楚戰)에서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포위하고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불러,초군(楚軍)의 사기를 꺾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천하를 통일한 漢 고조(高祖) 유방(劉邦)도 楚나라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황제가 된 뒤에도 궁중에서 초가(楚歌)를 연주하게 했는데,그러자 종전의 소박했던 가사내용인 ‘사(辭)’가, 화려한 궁중음악의 가사내용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를 일러 ‘부(賦)’, 즉 ‘한부(漢賦)’라고 하며, 사실상 형식적인 면에서는 ‘사(辭)’와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부(辭賦)’로 통칭되기도 합니다.간단히 말해, 장편의 서사시(敍事詩)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수없이 많은 뛰어난 문장가들이 명멸해간 중국역사 가운데,가장 돋보이는 천재를 꼽으라면 아마도 조식(曹植)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위(魏) 무제(武帝)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10살 때 이미 11만자의 문장들을 외우고 있었고, 위(魏)가 천하를 사실상 통일한 후,건안(建安)문학을 일으켰으며, 오언시(五言詩)를 완성시켜,훗날 사령운(謝靈雲) 및 唐나라 이백(李白) 및 두보(杜甫)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러한 조식(曹植)의 대표작중 하나가 바로 <낙신부(洛神賦)>입니다.222년 조식(曹植)이 형인 조비(曹丕), 즉 위(魏) 문제(文帝)의 부름을 받아 朝廷에 들어갔다가,다시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낙수(洛水)를 지나가면서 낙신(洛神)의 일을 생각하고 지었다 합니다.
작가와 낙수(洛水)의 女神이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사람과 神은 서로 달라 가까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했는데,즉 現實과 理想의 심한 괴리에서 오는 실망과 고뇌의 심정을 드러낸 내용입니다.
神話 중 복비(宓妃)의 고사를 기초로 하여 낙신(洛神)이라는 미녀를 창조하였고,전기적(傳奇的)인 색채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표면적 내용뒤에는 매우 가슴아픈 슬픈 스토리가 숨겨져 있습니다.삼국지(三國志)에는 두명의 미인이 등장합니다. 한명은 동탁(董卓)의 여인이었던 초선(貂嬋)이요,또 한명은 원소(袁紹)집안의 여인이었던 견희(甄姬)입니다.
이중 견희(甄姬)는 본명이 복(宓)으로, 어려서 집안의 뜻에 따라 원소(袁紹)의 집안으로 출가를 했고 자라서는 단지 아름답기 때문에 마치 전리품처럼 조조(曹操)의 집안으로 끌려간 비운의 여인입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이 나타나자 낭만적이었던 조식(曹植)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터,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정적(政敵)이자 실권을 쥔 자신의 형인 조비(曹丕)에게 넘어갑니다.
한눈에 그녀에게 반한 조비(曹丕)는 그녀를 자신의 처로 삼고,조비(曹丕)가 즉위하자 그녀는 문소황후(文昭皇后)가 되는데,의처증이 심했던 조비(曹丕)는 아들 조예(曺睿)와 딸 동향공주가 평범하게 생긴 자신과는 달리 너무 아름답자, 자식들의 모습에서 그녀를 흠모하던 빼어난 동생 조식(曹植)을 떠올립니다.
급기야 첩인 곽씨의 모함에 혹해 그녀를 죽이고는,잔인하게도 동생인 조식(曹植)을 서울로 불러, 그녀의 죽음을 알림과 동시에 그녀가 사용하던 벼게(枕)를 던져줍니다.
조식(曹植)은 사랑하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던 중,낙수(洛水)를 건널 때, 사랑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그녀와 이름이 같은 神話상 복비(宓妃)를 빌어, 그녀의 생전의 아름다움과 이루지 못한 애틋한 감정을 노래합니다.
원래의 제목은 감견부(感甄賦 : 甄氏를 느끼며 지은 賦)였으나,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의 의심으로 죽임을 당한 어머니를 항상 애통히 여겼던 조비(曹丕)의 아들 명제(明帝) 조예(曺睿)가 어머니의 명예를,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이 詩를 낙신부(洛神賦)로 改名하였다고 합니다.
이상의 내용이 <문선(文選)>의 서문에 전해집니다.
(記曰:...黃初中入朝,帝示植甄后玉鏤金帶枕,植見之,不覺泣。時已為郭后讒死。
帝意亦尋悟,因令太子留宴飲,仍以枕賚植。植還,度轘轅,少許時,將息洛水上,思甄后。
...遂作感甄賦。後明帝見之,改為洛神賦)
현존하는 중국시 가운데 여인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묘사한 글입니다.
매우 긴 글이므로, 여인의 형상을 묘사하는 부분만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中略)
其形也, 翩若驚鴻, 婉若游龍.
榮曜秋菊, 華茂春松.
그 자태는, 날렵하기는 놀란 기러기같고, 유연하기는 굽이쳐 오르는 용같으며,
소담스럽기는 가을 국화같고, 무성하기는 봄날의 소나무같구나.
髣彿兮若輕雲之蔽月, 飄颻兮若流風之迴雪.
가벼운 구름이 달을 가리듯 아른아른하며,
흐르는 바람이 눈보라를 휘감아올리듯 가볍게 날아오르네.
(여기서 ‘폐월(蔽月)’이란,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단어가 유래됨)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迫而察之, 灼若芙蕖出淥波.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아침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같이 밝고,
가까이 살펴보면 마치 푸른 물결 위로 피어오른 연꽃처럼 눈부시네.
襛纖得中, 修短合度.
肩若削成, 腰如約素.
풍만함과 갸날픔이 어우러지고,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하며
어깨는 조각한 것 같으며, 허리는 갓 짜낸 흰 비단을 묶어놓은 듯하구나.
延頸秀項, 皓質呈露.
芳澤無加, 鉛華弗御.
길고 가녀린 목덜미로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데
향수를 더하거나 분단장을 하지도 않았네.
雲髻峨峨, 修眉聯娟.
丹脣外朗, 皓齒內鮮.
머리는 구름처럼 높게 틀어올리고, 눈썹은 길고 가늘어 아름다운데,
붉은 입술에는 윤기가 나며, 하얀 이가 살짝 곱게 드러나네.
(여기서 ‘단순호치(丹脣皓齒)’란 표현이 유래됨)
明眸善睞, 靨輔承權.
瑰姿豔逸, 儀靜體閑.
맑은 눈동자로 살짝 눈웃음을 치는데, 보조개가 턱선을 잇는구나.
아름다운 자태는 요염하기 이를데 없고, 거동은 고요하면서도 여유롭다네.
(여기서 ‘명모호치(明眸皓齒)’란 표현이 유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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忽不悟其所舍, 悵神宵而蔽光.
於是背下陵高, 足往神留,
문득 그녀가 있던 곳이 보이지 않더니, 복비(宓妃)도 사라지고 빛마저 흐려지네.
이제 낙수(洛水)를 뒤로하고 돌아가려니, 발걸음은 움직여도 마음이 떠나질 못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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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僕夫而就駕, 吾將歸乎東路.
攬騑轡以抗策, 悵盤桓而不能去.
마부에게 수레를 몰게하고, 이제 동쪽길로 돌아가려는데,
말고삐를 다잡고 채찍을 들었건만, 이리저리 서성이며 나아가지 못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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