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은 모태진보인가
- 김 : 예전에 ‘5공 노빠’라는 말을 형님께서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 공 : 제가 예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죠. ‘민정계 노빠’라고. 노빠들 가운데 생각이나 행동이 민정당스러운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흐흐흐
- 김 : 제가 유시민 참여당 대표한테 의아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고 영천에서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가 5공 때 전두환하고 관계가 좀 있었던 사람인데 그 분 선거운동을 하더라고요. 그게 가능하다고 보세요?
= 공 : 그럴 수도 있죠. 나는 거기까지는 이해합니다. 이해는 하는데…. (물 한 컵을 마시고) 선거운동 차원에서 한 거라 이해는 하는데 지금의 유시민 씨는 선거운동 할 때나 꺼낼 수 있는 얘기들이 철학이 돼버렸어요. 철학이!
- 김 : 구체적으로?
= 공 : 지금 유시민 씨가 내세우는 철학은 딱 하나에요. 닥치고 영남후보! ‘닥치고 영남후보’란 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념도 묻지 말고, 정책도 묻지 말고 무조건 영남 출신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건 지역패권주의가 아니에요. 인종주의야, 인종주의!
- 김 : 지역패권주의 정도가 아니라 인종주의다?
= 공 : 비유하면 자기네는 모태진보라는 거야. 엄마 뱃속에서부터 진보래. 제가 예전에 어느 선배와 얘기를 나누다가 충격을 받았던 게 그 선배 말로는 김두관은 괜찮은 후보라는 거야. 내가 그 이유를 물으니까 영남 출신이라는 게 얼마나 커다란 프리미엄이냐고 나한테 되묻더라고.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없는 거예요. 그 사람의 철학이 뭐고, 노선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야. 대신에 인간의 주관적 의사와는 무관한 선천적 요소, 생득적 요인만 가지고 유ㆍ불리를 따지는 거지. 우리가 만약에 그와 같은 사고를 인정하게 되면, 그리고 그와 같은 생각에 굴복하게 되면 북한의 권력 세습도, 삼성의 경영권 대물림도 비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자기들이 가지고 태어난 복인데 그게 어떻게 문제가 되겠어요? 어차피 복불복인데. 복불복. 복불복에 무릎 꿇는 진보가 무슨 진보에요? 어디 가서 까나리액젓이나 팔아야지.
현재의 한국에서야 진보가 사회적 약자들 돌보는 자선운동처럼 인식돼 있지만 원래 진보란 굉장히 남성적이고 진취적 개념입니다. 주어진 조건이 아무리 강하고 지배적이더라도 그것이 합리적인 기준과 보편타당한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뜯어고치는 것, 그게 참다운 진보입니다. 그렇지만 유시민 씨는 그게 아니거든요. 영남이 만끽하고 있는 부당한 기득권을 인정해. 그걸 왜 인정하느냐면 그냥 태어날 때부터 그렇다는 거야. 그게 조선시대에 양반하고 상놈 구분하던 것과 무슨 차이가 나요? 나는 유시민 씨와 그 주변세력들이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을 걸 참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만일 그때 태어났으면 양반이랍시고 얼마나 횡포가 심했겠습니까?
- 김 : ‘영남후보론’의 요체는 이런 게 아닐까요? 호남은 반한나라당 성향이면 몰표를 줄 것이고, 영남 같은 경우에는 표가 분산될 거라는?
= 공 : 정치공학을 논하기에 앞서서 나는 정의와 관련된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고 싶어요. 사람도 안 보고 단지 영남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호남 유권자들이 그 사람을 왜 찍어줘야 하죠? 영남후보론이란 게 본질은 뭐냐? 호남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영남에 빚이 있다는 소리에요. 오히려 반대죠. 갚아야 할 쪽은 영남입니다. 호남이 무슨 모르모트입니까? 왜 영남 후보면 무조건 찍어줘야 해? 허허허….
- 김 : 호남 후보로서는 대선에서 과연 경쟁력이 있겠느냐고 의문시하는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건 사실 아닌가요?
= 공 : 그 프레임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리고 누가 유포했습니까?
- 김 : 영남에서 그랬겠죠.
= 공 : 과거에는 그 프레임을 조선일보가 주도적으로 퍼뜨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심지어 딴지일보마저 그 프레임을 열심히 확대 재생산하고 있어요. 그 프레임이 어떤 결과를 낳았느냐 냉정히 따져보자고요. 한겨레신문이 진보라고 하죠? 그 한겨레가 정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정책과 이념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스탠스를 보면 정동영 씨가 유시민 씨보다는 훨씬 좌로 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매일 유시민에 대해서만 우호적이야. 정동영한테 우호적인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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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 유시민 씨는 그 부분과 관련해서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정동영 전 장관이 선택적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좌로 것 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공 : 밤낮이 왜 바뀌겠습니까? 나는 가만 있는데 지구가 돌잖아. 지구가 자전한 결과잖아요? 낮이 밤 되고, 밤이 낮 된다고 괜히 엄한 지구를 탓하면 안 돼지. 나는 유시민 씨를 보면 코페르니쿠스는 코페르니쿠스인데 역(逆) 코페르니쿠스 같아요. 한마디로 유페르니쿠스랄까?
- 김 : 유페르니쿠스, 하하하!
= 공 : 우리가 영남에서 표를 더 얻으려면 어떠한 한계와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냐면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우회전을 해야 해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야 돼.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듯이 박수를 세 번 치고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정국 때를 빼놓고 영남에서 국정지지도가 정점을 찍었던 시점이 있습니다. 그게 언제인 줄 아십니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시켰을 때에요. 그때 영남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등했습니다. 누구한테서 인기 폭발했냐? 영남 50대한테서.
- 김 : 절대 표 못 얻을 사람들한테서 지지율 오른 거네요.
= 공 : 그 덕분에 지지율 또 쫙 빠졌잖아요. 호남에서, 수도권에서, 그리고 서민층에서. 영남에서 표를 얻는 게 중요하다는 유시민 씨의 이야기가 왜 어폐가 있냐면 전방을 향해 움직이는 세상에서 혼자 뒤처진 사실을 마치 자기가 가만히 제자리를 지킨 것처럼 교묘하게 분칠하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씨를 볼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납니다. “저 양반은 인간이 아니다. 메칸더브이다.” 왜? 두껍잖아. 저건 강철 정도가 아냐. 초강력 합금이야. 합금!
- 김 : 유시민 씨는 자신이 왜 대권주자들 중에서 지지율이 2위나 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공 : (천연덕스러운 말투로) 유시민 씨가 2위가 맞습니까? 한국사회에서 조중동으로 통칭되는 보수언론이 힘을 합쳐서 뽑아낼 수 있는 여론 지배력이 30프로입니다. 박근혜 지지율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로 대표되는 진보매체들이 행사할 수 있는 여론 장악력이 15퍼센트입니다. 진보언론이 대중에게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의 범위가 딱 유시민 지지도인 겁니다. 만약 한겨레와 오마이가 유시민이 아닌 다른 후보를 지금처럼 밀어주고 있다고 상정해보세요. 그럼 정확히 유시민 지지율 나옵니다.
한겨레건 오마이건 전부 다 영남패권주의에 심각하게 오염됐습니다. 손학규 씨가 작년 가을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을 때 한겨레신문의 첫 번째 반응이 뭐였습니까? 손학규의 승인, 곧 이긴 원인은 처신을 잘해서래요. 내가 당시에 한겨레의 반응을 그려본 시나리오가 있었습니다. 정동영이 당대표가 됐을 때는 ‘지역주의 부활’로 매몰차게 깎아내리고, 경상도에 통 크게 퍼주기 하는 정세균 씨가 당대표에 당선됐을 경우에는 ‘참여정부 계승을 염원하는 민심의 표출’ 운운하면서 보나마나 엄청나게 빨아줄 거라고 예상했지요. 손학규가 이기니까 한겨레신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딱 중간에 서더라고. 유시민의 지지율은 유시민의 것이 아닙니다. 한겨레와 오마이가 여론에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의 크기를 반영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때 최근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가 조국 씨를 밀어주는 것에 대해서 가장 찜찜한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