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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미사일에 의한 정밀 타격, 그리고 다국적군의 공습... 마치 전의 이라크 전쟁의 시작을 보는 것처럼, 서방의 대 리비아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그 오프닝 쇼는 정말 걸프전을 아주 닮아 있습니다. 조지 부시가 마음대로 들이댔던 2차 걸프전같진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뉴스를 들으며 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국제 사회의 권고와 지시, 합의사항을 어기고 자국민 학살에 다시 나선 독재자를 참아 넘길 수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제한적인 타격'을 허용했다고 덧붙였는데, 결국 가다피가 이 모든 화를 자초한 셈이긴 합니다. 합의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띄우고 탱크를 진격시켜 반군을 압살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석유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국제 유가를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보고만 있던 서방국가들을 확실히 자극했겠지요.
그러잖아도 배럴당 2백달러가 가까워 오니 하는 뉴스가 계속 들렸던데다, 일본의 사태로 인해 이 사태 수습을 위해 앞으로 계속해 석유의 수요가 폭증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에게나 가능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또 북반구에서 휴가 등으로 인해 유류의 수요가 집중적으로 많아지는 5-9월의 기간을 앞두고 휘발유가격의 추가 상승 요인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가다피는 '선'을 넘어 버린 셈입니다.
지금까지 방관만 하던 미국이 프랑스, 영국과 함께 본격적인 공격을 계획하고 감행하긴 했습니다만,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합니다. 가다피는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고, 지중해 지역 국가들에 대한 '민간인까지를 포함한 공격'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로서는 원래 여기까지 오고 싶진 않았지만 미적거리다가 결국 명분상 어떻게 공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시작하게 됐다는 인상이 짙고, 그 면에선 이미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전선을 늘릴대로 늘려 놓은 미국으로서도 부담이 마찬가지인듯 합니다. 그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절대로 리비아로의 지상군 투입은 없을 것이란 강조법 수사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같은 서방진영의 리비아 공격에 대해서 상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고, 이를 간파하고 있는 리비아의 가다피 정부 역시 유엔 안보리의 소집을 요구하고 또 '유엔 헌장에 따라서' 자국을 지키겠다는 상당히 영리한 수사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연합 등 과거 제 3국 블럭도 서방에 대한 못마땅한 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반기문 유엔총장은 이번 서방의 대처가 매우 적절했다는 평을 내 놓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가다피의 '제거'가 확실해진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가다피 정부와의 '딜'로 이어질 공산이 크지 않을까 싶네요. 당장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목적은 '끝까지 싸워 가다피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보다는 '석유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 쪽에 무게가 더 실린 듯 보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전쟁은 다행히(?) 커다란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국가의 지원을 믿고 이제 공세를 개시하게 될 반군은 '성공'을 하게 되면 친서방이 될 가능성이 크고, 실패하게 되면... 아마 가다피의 철저한 보복을 받게 되겠지요. 즉 싸움의 주체는 '그들'이 될 것입니다. 미국이 굳이 자국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이유엔 이런 계산도 깔렸을 것입니다만,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늘 이렇게 전쟁과 분쟁의 위협은 상존하고, 강대국들의 잇속 계산은 빠릅니다. 그 입장이 참으로 어정쩡했던 미국, 영국, 프랑스의 뒤늦은 리비아 사태의 개입은 석유가 매개가 된 것임엔 분명하지만, 또 한가지 이유를 찾자면 이 '혁명'이 성공하더라도 이란의 전철을 밟게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개입됐을 것 같긴 합니다.
이란의 회교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원리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됐었습니다. 사담 후세인을 부추겨 자기네들은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호메이니 정권을 제거하려 했던 미국은 이후 자기들의 '수하'였던 사담 후세인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거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의 전쟁을 통해서. 이번 전쟁의 그런 식의 확대는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없을 듯 합니다만, 항상 그 전쟁에 이용당하는 사람들은 불쌍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네요.
가다피같은 독재자 치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참 안됐다는 마음이 들고, 가다피는 역시 죗값을 치러야 하긴 하지만... 서방의 개입이 차라리 조금 더 빠르고 신속하게, 이 사태의 초기에 진행됐다면 가다피를 권좌에서 축출하는 것이 훨씬 쉬웠을텐데, 지금에서야 이런 식으로 개입하는 저들을 보면서 그들의 잇속 계산에 눈살이 찌푸려지는군요.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