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 김용민(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가 현재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책과 관련해 나와 함께 이야기할 게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굉장히 낯간지러운 모양새일지언정 내 스스로 대한민국의 신진기예를 자임하면서 대담, 정확히는 방담을 감행했다.
방담은 3월 21일 월요일 오후에 원효로3가에 위치한 ‘제국기획’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녹음된 내용을 녹취록으로 풀어내는 일을 원래는 속기사 사무실에 맡길 예정이었는데 말 못할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내가 직접 그 작업을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방담의 전문을 몇 개로 나눠서 올릴 수밖에 없는 점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비영남-반강남은 미래의 물결
- 김용민(이하 김) : 국내 최고의 정치 석학, 아니 석학을 넘어 박학으로 활동하고 계신 공희준 선생을 모시고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공희준(이하 공) : 국내 최고라니요? 저는 그 말이 못마땅합니다. 세계 최고라고 불러주세요. 흐흐흐….
- 김 : 하하하! 세계 최고 맞습니다. 무엇보다도 ‘강남좌파’란 개념,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가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아니, 더 됐네. 2005년인가, 형님이 나한테 그랬어. 강남-비강남, 이 프레임이 생길 것이라고 나한테 말했던 게 기억이 나요.
= 공 :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의 소신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사회가 가야 할 방향은 비영남-반강남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비영남은 탈냉전을 말합니다. 반강남은 요즘 유행하는 공식 용어로는 신자유주의, 더 엄밀하게 표현하면 돈 놓고 돈 먹기의 배금주의, 그야말로 돈이 최고라고 믿는 더러운 배금주의를 배격하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비영남-반강남을 본격적으로 내세워도 모자랄 판인데 ‘닥치고 영남후보’의 연장선상에서 튀어나온 유시민 씨가 으스대고 있다는 거지요. 비영남-반강남 구도에서 바라보면 그는 파묻어야, 파묻혀야 할 사람이거든요. 한마디로 정치적 살처분 대상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침출수처럼 흘러나와서 한국정치를 오염시키고 있어요.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반강남을 해야 할 상황임에도 “강남 사는 게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강남좌파, 까놓고 말해서 강남 버러지들까지 득세하고 있습니다.
- 김 : 강남좌파들의 경우는 한나라당 식의 극한적 색깔론과는 거리가 멀고, 좌파노선에 입각한 시각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냉전주의자라고나 배금주의자들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조금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 공 :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는 철저하게 결과만 놓고 봐야 합니다. 동기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이미 마키아벨리가 오백 년 전에 통찰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경험했듯이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주사파들이 한국사회에서 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언제냐면 북한이 심각한 식량난에 빠지기 전의 일입니다. 동구권의 붕괴와도 무관합니다. 즉 사회주의 체제의 실상이 폭로되어 주사파가 몰락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왕년에 반미를 부르짖던 386 운동권 스타들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유학을 가는 시점부터 주사파가 퇴조했습니다. 자기들이 미국물 먹고 왔을 때, 곧 남이 미국물 먹었을 때는 반미를 외쳤지만 자기가 미국을 먹고 난 다음부터는 반미를 안 외쳤다는 거죠.
마찬가지입지다. 강남좌파란 거,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예컨대 강남좌파란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표현이냐면 이 세상에 ‘여성친화적 성폭행’이란 게 있을 수 있습니까? ‘여성친화’건 ‘여성안친화’건 간에 성폭행은 성폭행인 거예요.
- 김 : ‘환경친화적 4대강사업’처럼요?
= 공 : 그렇죠. 좌파를 표방하건 우파를 표방하건 간에 강남 사는 것들은 한마디로 ‘민나 도로보데스’, 즉 전부 도둑놈들이에요. 흐흐흐…. 요즘 유행하는 강남좌파란 것은 단지 집이 강남에 있기 때문에 강남좌파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강남이 상징하는 어떠한 사회적 토대, 강남이 상징하는 어떠한 구조적 틀을 인정한 다음에 뭔가를 하자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분명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이 존재합니다. 모름지기 명색이 좌파라면 근본적인 모순의 근원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개혁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강남좌파들은 그걸 건너뛰고 진보하자는 소리거든요.
- 김 : 무엇을 건너뛴다는 것인지?
= 공 :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건너뛰자는 거지요. 말하자면 이래요. 강남좌파라는 것은 철저하게 미국식 패러다임의 소산입니다. 매니지먼트인 거죠. 정치(Politics)와 행정(Administration)의 가장 큰 차이는 이겁니다. 정치는 기존의 질서를 새롭게 뜯어고치고, 이와 동시에 새롭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정치입니다. 반면 행정은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잘 유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행정의 역할은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일입니다. 발명과 창조는 아니거든요.
그러나 정치는 R&D에요. 연구와 개발이 주된 임무입니다. 새로운 것을 연구, 개발, 발명, 창조하는 것이 정치고, 행정은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것인데 강남좌파들은 기본적으로 행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사람들입니다.
- 김 : 제가 얼마 전에 지금은 국민참여당 당대표가 된 유시민 전 장관이 중앙선데이에서 한 인터뷰를 봤는데 지금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갑자기 그 인터뷰가 생각났습니다.
= 공 : 인내심 참 강하시네. 흐흐흐…. 저는 김용민 교수님이 굉장히 존경스러워진 게 우리 사회에서 유시민 씨 인터뷰를 통독할 수 있다는 것은 득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입니다. 성불하신 거예요. 참, 기독교 신자시니까 성불은 아니겠구나.
- 김 : 교회에서는 거듭났다고 합니다. 하하하!
= 공 : 나중에 분명히 휴거하실, 아니 휴거되실 겁니다. 흐흐흐….
- 김 : 유시민 전 장관이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여러 복지 방안들, 즉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대학등록금의 3무 1반에 대해서 허무맹랑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는데 이거야말로 Administration에 치우친 개념 아닐까요?
= 공 : 이게 좌담이 아니고 방담이잖아요. 방담이 뭡니까? 웃고 떠드는 거잖아요. 김어준 씨가 정말 나쁜 짓을 한 게 있어. 대한민국에서 웃고 떠드는 식의 인터뷰는 유일하게 김어준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사람들, 특히 네티즌들 사이에 심어준 거지. 그게 아니지. 오늘 우리 한번 횡설수설, 좌삼삼 우삼삼으로 막 나가봅시다. 어디 총수만 막 나가란 법 있나? 흐흐흐….
- 김 : 저는 무상복지에 관련된 유시민 전 장관의 얘기가 좀 황당하게 들렸거든요.
= 공 : (정색하고서) 그런데 그게 유시민 씨의 말이 맞아요. 제가 며칠 전에 어느 신문에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보통 말하는 수구꼴통들이 어깃장 놓는 거라고만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복지담론 식으로 가다보면 대부분의 국가예산과 사회적 에너지가 80 되신 어르신들을 90살까지 장수하시도록 하는 데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자세히 보면 우리가 애들한테 지출하는 교육비보다도 노인들을 위해 쓰이는 병원비가 나중에는 더 커질 수 있어요.
사실 우리가 잘 말은 안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는 사회적 에너지가 새롭게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 쓰이는 게 아니라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에 소모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든 되신 어르신 아흔까지 사시게 하려면 거의 두 가지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기계야 약물이 그것입니다. 기계와 약물의 힘에 결국은 의지해야 한다는 건데 그 비용이 엄청납니다. 그 비용을 의료(보험) 개혁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핵심은 그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