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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3인칭,유시민의 3인칭
정동영 씨는 결정적 고비마다 주인공의 위치가 아닌 제3자, 즉 관찰자의 위치로 무의식적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학, 특히 소설에 비유하면 화자의 시선이 1인칭 시점에서 3인칭 시점으로 갑자기 바뀌는 것입니다.
습관성 3인칭 시점은 그가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와 애정을 좀처럼 얻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입장을 취하도록 방송국에서 오랫동안 훈련받은 데 아마 그 이유가 있겠지요. 법관 출신 정치인들이 흔히 보여주는 오만한 권위주의처럼 일종의 뿌리 깊은 습관입니다. 습관이 완전히 몸에 배이면 태생적 한계가 되기 마련입니다. 유권자들에게 진정한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거야말로 정동영 씨의 여전한 치명적 약점입니다.
유시민 씨는 정동영 씨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줄곧 정치를 해온 사람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실수는 순전히 기술적인 측면에만 국한됩니다. 이를테면 “나는 저 인간처럼 나쁜 짓 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나는 저 인간처럼 들키지 말아야지!” 하는 식이지요. 적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이 탑재된 정동영’, 그게 바로 현재의 유시민인 셈입니다.
그 결과 유시민 씨 또한 결정적인 고비마다 3인칭 시점으로 갈아탑니다. 그럼으로써 자기가 주범으로 연루된 사건들에서 늘 성공적으로 빠져나오곤 합니다. 노무현 정권의 과오를 이야기하는 그의 시선은 전형적인 3인칭 시점입니다. 정동영의 3인칭 시점이 잘못 길러진 버릇이라면, 유시민의 3인칭 시점은 책임회피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채택된 교활한 책략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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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보통 국가화'가속화 할듯
금번 동북지방 대지진을 계기로 현재의 자위대를 정규 군대로 확대ㆍ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본 내에서 한층 더 힘을 얻을 전망입니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자위대원들로 구성된 ‘가미카제 결사대’가 치명적 핵 재앙을 결정적으로 막았다.”는 무용담 가미된 분석이 결국은 제기될 테니까요. ‘영웅 만들기’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자폭탄 두 발을 맞고서 평화헌법을 억지로 채택하게 된 일본이 원자핵을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소에서 비롯된 재해로 말미암아 이른바 ‘보통국가’로 다시 돌아가는 현실, 참으로 오묘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무서운 속도로 재건의 삽질을 시작할 일본이 나는 두렵습니다. 사무실 서가에 그동안 장식용으로 얌전하게 꽂혀 있던 ‘모리타 아키오(SONY의 창업자)’를 다룬 책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이유입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한글로 제공하는 NHK 실시간 문자중계 서비스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 훨씬 유용하더군요. 물론 일본 언론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춘추필법’의 잣대를 적용하여 불리한 내용들을 알아서 걸러낼 가능성이 크긴 합니다만, 한국 언론의 보도양태만 관찰하노라면 일본에 지진이 난 게 아니라 꼭 외계인이 쳐들어온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웃나라에 어쩌면 지구의 멸망을 불러올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강진이 일어났는데 파주에 무슨 물류센터 세워서 땅값 올라가는 게 중요합니까? 강남좌파들만큼이나 개념 없고 경우 없는 족속들이 대한민국의 기자들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사례입니다.
일본은 일어납니다. 대신에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 간의 진정한 평화와 우의가 뒷받침되어야만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는 일본 정부와 국민들에게 반드시 효과적으로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침착하고 냉정하게 사태에 대처해야 마땅할 대한민국 유수의 신문사와 방송국들부터 저 호들갑 떠는 꼬락서니를 보니 아무래도 어려울 듯싶습니다, 쩝!
출처:수복(본 칼럼은 유료칼럼이므로 무단전재 퍼가기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