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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농법 밀어낸 기계화,과학화 영농
요즈음은 벼농사 짓기가 매우 수월하다. 모내기부터 농약치고 비료 뿌리고 베어 탈곡하여 말리는 것까지 모두 기계화가 되어있어 흙쳐서 모판깔고 비닐로 덮고 모내기전에 모판떼어내 모심을 논으로 운반하는 일과 모내기후 빠진곳,심기 어려운곳 일부를 사람 힘으로 모때우기 하는것 외에 달리 할일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기계화로 인해 오로지 가축과 인력에 의지하던 때보다 열배이상 많은 논을 경작하다보니 논두렁 풀깎고 물꼬보노라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 조금 부담이 될정도다.
그러나 오늘날과 달리 사람의 힘이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1970년대 중반 이전에는 모를 심어 놓은후에도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었다. 가을 추수후 보리심을때 뿌려야할 거름을 만들기 위해 산과들을 헤매며 보리풀을 베어다 작두로 썰고 썩혀서 거름을 만드는 퇴비증산에 허리가 휘여졌다. 비오는 날이면 고구마순 잘라 두럭(두렁)에 옮겨심고 담배농사까지 짓는 집은 우윳빛을 띤 익은잎을 따다 건조막에서 엮어 매달아야 했다.
이처럼 바쁜 와중에도 빼놓을 수 없고 게을리 할 수 없는게 벼논 김매기다. 김매기를 소홀히 하면 잡초가 꽉 들어차 벼포기가 벌어지지 않음은 물론,크지 못하고 그러다 결국 잡초에 치여 오그라 들어 버릴 뿐만 아니라 벼의 최대조건의 적인 피까지 활개를 치다보면 농사는 그것으로 끝이다. 벼농사 지으려다 피농사로 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농부들은 벼농사의 성패,농부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피와 잡초를 추방하기 위한 김매기에 정성을 기울인다.
초벌,두벌,세벌 김매기는 벼농사 성패를 좌우하였다.
벼논 김매기는 기본이 세번이다. 초벌,두벌,세벌매기라고 부르는데 초벌은 모내기를 한후 보름정도 지나 어느정도 모가 뿌리를 내리고 짙푸른 색깔을 보일때쯤 맨손으로 논바닥을 휘저으며 갓 자라기 시작한 잡초를 쓸어모아 한줌이 되면 거름이 되도록 논바닥에 놓고 발뒤꿈치로 밟아 땅속으로 밀어 넣는다. 김을 맬때는 가급적 흙탕물을 많이 일구어 주는게 산소공급도 잘되고 유기물질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때문에 벼가 좋아 한다며 바닥을 손가락으로 후벼파 흙을 뒤집어 준다.
초벌매기가 끝난후 벼가 이삭을 배기 시작하기 전까지 사이에 두벌매기와 세벌매기를 하는데 이때는 제초기나 호미를 사용하여 김매기를 한다. 서서 두손으로 밀고 다니는 제초기는 마을에 한두대씩 있었는데 팔랑개비 모양으로 된 발이 네줄로 원형을 이루어 바뀌식으로 앞뒤로 2개가 달려 있는 형태다. 제초기가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밀고만 가면 되기 때문에 허리를 굽혀서 매야 하는 호미매기 보다 편하고 능률도 앞섰지만 바닥을 완전히 파 뒤집어 잡초가 완벽하게 땅속으로 묻히도록 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밀고 가는 고랑외에 벼포기 앞뒤 사이 잡초는 제거할 수 없는 단점 때문에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초벌,두벌,김매기는 대부분 호미를 사용하여 김을 맸다. 논 김매기용 호미는 아낙네들이 콩밭이나 고추밭,채소밭 맬때 사용하는 밭호미보다 무겁고 끝이 뾰족하다. 지리산 주변 시골에서 '성녕간'으로 불렀던 대장간에 미리 두세자루를 주문해 두었다가 장날 찾아다 쓴다. 두벌,세벌,김매기할 무렵이면 모가 상당히 자란 상태라 소매없는 런닝만 입고 김을 매면 벼잎과 살갗이 접촉하게 되어 쓰리고 상처가 생길 수 있어 당시 유행하던 뽀뿌렝 천으로 만든 토시를 팔에 끼고 김을 맨다.
보통 두벌,세벌 김매기는 할아버지,아버지 그리고 장성한 아들등 집안 남정네들과 품앗이 일꾼,그리고 품삯을 주고 얻은 놉까지 대개 3~6명 정도가 함께 모여 일을 한다. 한사람이 보통 네고랑씩 맡아 매나가는데 김을 잘매는 사람이 일이 서툴러 속도가 늦은 옆사람을 도와 주면서 앞서가는 사람없이 균형을 맞추어 나간다.
호미로 김을 맬때는 오른손으로 호미를 들고 바닥을 파 뒤집어 왼손으로 파 뒤집은 흙을 저어 고르면서 손에 잡히는 잡초를 긁어모아 한주먹이 되면 바닥에 놓고 발로 밟아 넣는다. 김매기는 계속 허리를 굽히고 하기 때문에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이러한 고통을 털어내고 속도감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어여차! 어여차,잘도 논다. 옹혜야"라는 노랫가락을 합창하여 김을 매는 경우가 많다.
우렁,개구리,뜸북이,왜가리와 함께한 친환경 김매기
논 김매기는 삼복 염천 뜨거운 여름철에 하기 때문에 오전 김매기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느티나무 그늘에서 한잠 푹자고 태양 열기가 조금 누그러지면 논으로 나가 오후 김매기를 한다. 영화필름을 잘라 테를 두른 밀집모자를 쓰고 목에 두른 수건으로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김을 매던 모습을 요즈음은 찾아볼수가 없다. 사람이 없어 김을 맬 일손도 없지만 무엇보다 잡초는 물론이고 질긴 생명력에 악물 취급을 받던 피까지 모조리 초토화시키는 성능좋은 제초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모내기전 써레질,로타리 해놓고 한번 뿌리고 모내기후 보름정도 지나 한번 더 제초제를 뿌려 놓으면 잡초하나 없이 논바닥이 깨끗하다. 제초제가 나오면서 호미로 김을 매는 수고는 덜었지만 문제는 농촌이 삭막해 졌다는 점이다. 농약을 많이 쓰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제초제를 쓴 이후로 논바닥에 굴러 다니는 우렁,흙탕물을 일으키던 미꾸라지,개굴대며 날궂이 하던 개구리를 보기가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호미로 친환경적 김매기를 할때는 우렁과 미꾸라지,개구리가 논바닥에 득시글거렸고 왜가리와 황새들이 입맛을 다시며 이들을 잡아 먹으려 논배미를 분주하게 돌아 다녔다. "뜸~뜸~뜸~ 뜸뜸뜸뜸" 소리로 새끼를 불러 모으던 뜸북이도 사라졌고 논을 헤집으며 우렁,개구기,미꾸라지와 술래잡기 하던 왜가리,황새도 도랑가에 숨어 중태기(버들치)에 눈독을 들이거나 방죽가에 기어 다니는 우렁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처지가 되었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호미로 김을 매던 모습도 사라질 수 밖에 없었지만 굵은 땀방울 흘리며 막걸리 한사발,국수 한그릇 샛거리(새참)로 꺼진 배를 일으켜 세워가며 논바닥을 후벼파던 그때 그시절 농부들의 벼논 김매던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