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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다시 독후감이다. ‘임진강 기행’이란 책이 그 대상이다. ‘도서출판 정보와 사람’에서 펴냈다. 저자는 이재석. 파주에서 태어나 농대를 졸업하고서 고향인 임진강변에서 진짜로 농사를 짓고 있다. 농대 출신 농부가 존경받는 참으로 엽기적인 세상이다. 내가 학교 다닐 적에 나중에 대부분 ‘~과학대’란 생경한 명칭으로 개명한 농과대학의 재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대도시에 위치한 농협 아닌 농협에 취직하고 싶어 했다. 다른 학교들 사정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데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에 남은 기억과 인상들은 굉장히 오래 갈 듯하다. 특히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접어든 요즘 같은 시점에서는 더더욱.
“보지 못한 임진강이 더 길다.” 머리말에 쓰인 이 구절에 ‘임진강 기행’이 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느낌이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자면 그 장점을 부풀려 과장해도 모자랄 판국에 저자 스스로가 자기의 책이 지닌 태생적 약점을 아주 직설적으로 토로한 대단히 드문 경우라 하겠다. 이는 결코 겸손이 아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부제의 형식을 빌려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임진강, 더 이상 변방이 아니기를”
책에서 유달리 흥미로운 대목은 내포리 어선단에 관한 이야기다.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고 있는 이곳 어부들은 전통방식을 이어받아 노를 저어서 배를 운행하고 있단다. 구경삼아 찾아오는 외지 관광객들의 눈요깃감으로 고유의 어로법을 재현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란다. 혹 발생할지도 모를 월북사태를 우려해 관계당국에서 동력선을 불허한 까닭에서다. 그런데 배를 젓는 노마저 조업을 하지 않을 시에는 배 안에다가 놓아둘 수가 없단다. 노를 이용해 북녘으로 넘어갈까봐.
‘임진강 기행’의 저자는 사연이 쌓여서 역사가 된다고 말한다. 역사가 진보하려면 새로운 사연들이 끊임없이 계속 켜켜이 쌓여야 한다. 그렇지만 남북을 오가는 길들이 가로막힌 임진강에서는 새로운 사연이 쌓일 수 없다. 새로운 사연이 쌓이자면 사람의 왕래와 물물의 교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왕래와 물물의 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공간은 더는 변방이 아닐 터. 그곳이야말로 새로운 중심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총알이 왕래하고 포탄이 교환되는 전장에서 인간과 물산의 흐름이 자유롭게 이뤄지기가 곤란함은 당연한 노릇이다. 계절을 바꿔가며 임진강 유역에서 직접 촬영한 정겹고 아름다운 사진들에 수북이 담아 저자가 독자들한테 전하고픈 두 단어는 ‘평화’와 ‘통일’이다. 평화와 통일은 임진강이 더 이상 외롭고 쓸쓸한 변방으로 남아 있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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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텅 빈 바다를 향해 결국 발칸포탄만 실컷 발사한 걸로 드러난 포격훈련을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대한 과감한 응전이랍시고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던 2010년 12월 20일 오후, 연평도 주민들만큼이나 길고도 긴장된 하루를 보냈을 사람들은 임진강을 이고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파주출판단지에서 일하는 출판사 직원들은 오탈자 없이 매끈하게 편집해야만 하는 컴퓨터 모니터 속의 글자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나 했을까? 파주의 LCD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회사식당에서 받아들었을 식판 위의 밥알들이 정상적으로 소화가 됐을까? 출판단지는 김대중 정부가 낳은 성과물이다. LCD 공장은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손학규 씨의 작품이었다. 휴전선 너머에 위치한 개성공단은 전자가 대통령이고 후자가 경기도지사였을 무렵에 주춧돌이 단단하게 놓여졌다.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DJ는 출판단지의 출판인들을 위해 어떠한 얘기도 해줄 수가 없다. 반면 손학규 씨는 엄연히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는 LCD 공장의 노동자들을 위하여 하다못해 식판이라도 날라야 했다. 한데 손학규의 존재감을 거기 노동자들은 체감하기가 어려웠다. 4대강 공사 반대운동의 총대를 멘답시고 서울과 경상도를 바쁘게 내왕하다가 낙동강 오리알도 아니고 낙동강 용병 신세가 되고 만 탓이다. 햇볕정책의 수호천사 임무를 팽개치고서 기껏 한다는 짓거리가 영락없는 김두관 경남지사 수행비서다.
예상대로였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취임 두 달 만에 투명인간, 또는 잉여인간이 돼버린 배후에는 역시나 이른바 영남 민주화세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친노인사들이 손학규 캠프를 시나브로 장악한 것이다.
민주당 당대표로 당선된 손학규 씨는 첫 단추를 너무나 잘못 꿰었다. 민주당은 누가 만든 당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를 지지했던 인물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정당이다. 그렇다면 손학규 씨는 응당 김대중의 철학과 이념을 계승해야 옳다. 민주당이 김대중당의 옷을 입은 노무현당에서 김대중당의 옷을 입은 김대중당으로 정상화되기를 열망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응원과 도움에 힘입어 지난 10ㆍ3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씨가 파렴치한 줄 세우기 작태를 연출한 정세균 씨를 물리치고 새 당대표에 선출될 수 있었음은 굳이 두말할 나위조차 없으리라. 정세균 씨는 손학규 체제의 난조 분위기를 감지하고서 엊그제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진짜 노림수는 당권 재도전.
허나 손학규 씨는 그와 같은 기대와 염원을 보란 듯이 걷어차고서 김대중 의 철학과 이념 대신에 노무현의 가치와 노선을 계승하겠는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노골적으로 걸어왔다. 문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학과 이념은 엄연히 실체가 존재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와 노선은 여전히 그 종적이 묘연하다는 점이다. 과연 그런 게 있기나 한 걸까?
노무현의 가치와 노선이란 실재하지 않는 일종의 신기루에 불과함은 명성 자자한 영국 옥스퍼드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서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유수의 정치학과에서 대학교수까지 지낸 바 있는 손학규 씨가 모를 리 없다. 하면 도대체 무슨 연유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있지도 않은 가치와 노선을 물려받겠다면서 2개월이 넘는 귀중한 시간을 왜 쓸데없이 허공에 날려버린 것일까? 당대표 임기는 겨우 1년에 지나지 않거늘.
이유를 찾는 건 그리 힘들지 않다. 손학규 씨가 자신의 경쟁상대로 국민참여당의 실질적 당수인 유시민 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손학규 씨가 유시민 씨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도록 오도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은 주요한 진보매체들의 편집권을 쥐고 있는 친노 성향의 B급 언론인들이었다. 생각해보시라. 한겨레신문이고 오마이뉴스고, 시사IN이고 미디어오늘이고 손학규와 유시민, 유시민과 손학규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범야권을 대표할 쌍두마차라고 호들갑을 떠는데 그가 뽕 맞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지지 않을 도리가 있겠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보면 DJ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주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북한의 김일성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둘러싼 여러 국가들의 국가정상들과 가상의 두뇌게임을 하는 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북한, 미국, 소련, 중국, 일본 등의 국가원수들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담판을 짓겠다는 훈련을 부지런히 행했던 것이다. 그때 만약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 씨나, 김영삼 씨나, 이철승 씨 정도의 신통치 않은 인물들을 파트너로 선정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진행했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사의 거인 김대중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을 게다.
손학규 씨는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시사IN 원망할 필요 없다. 그따위 삼류 언론이 얼기설기 짜놓은 거짓된 허구적 프레임에 속아 넘어가 고작 유시민 따위를 주적으로 상정해 당을 이끈 것은 전적으로 손학규 씨의 책임이다. 그를 민주당의 영수로 앉히는 데 혁혁하게 공을 세운 친김대중 계열의 유능한 참모들 물 먹이고, 손학규 씨가 유시민-김두관 수준의 잔챙이들과 어울려 영남에서 땅따먹기나 하게끔 조언한 엉터리 책사들을 측근으로 중용한 것은 전적으로 손학규 본인의 선택이었다.
바둑에 비유한다면 손학규 씨는 기초적 포석 단계에서부터 돌을 잘못 놓았다. 저 동남쪽 제일 끄트머리에다가 첫수를 둔 격이다.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악수가 나온 건 그가 올바르고 숙성된 철학과 이념을 방기하고 얄팍하고 감각적인 정치공학에만 의지한 탓이 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바둑은 중원에서의 원대한 세를 지향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바둑은 구석에서의 두 집 얻기가 목표다. 철학과 이념이 있는 정치인과 없는 정치인이 각각 도달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귀결인 셈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나라의 미래와 겨레의 운명을 좌우할 중앙의 큰 마당을 저버린 채로 경상도에서 두 집 나는 하찮은 숙제에 언제까지 몰두할 작정인가? 바둑에 완전 문외한인 나조차 빤히 알 수 있는 이 간단한 이치를 한국사회에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손 대표는 어째서 모른다 말인가?
3. 그럼에도 본질적 과제는 손학규 씨가 잘못된 길로 빠진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있지 않다. 그가 낙동강에 목을 맴으로써 빚어진 결과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이 민주당의 바람직한 진로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 훨씬 유용하고 요긴하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지금 낙동강에서 4대강 공사 반대하는 일이 중요한가? 아니면 임진강에서 전쟁 터지지 않게끔 막아내는 게 중요한가? 4대강 공사 한다고 나라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아 한반도에서 제2의 6ㆍ25 전쟁이 발발하면 모든 게 끝장이다.
4대강 공사의 핵심은 낙동강이다. 낙동강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경상도민에게 맡겨라. 망하든 흥하든 지역민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 지방자치의 대전제다. 게다가 낙동강 하나 결딴난다고 해서 대한민국 망하지 않는다. 낙동강 결딴나면 그건 한반도 냉전체제의 최대 수혜자들이라 할 영남인들에 대한 정당한 응징일 뿐이다. 잘못된 정치인들도 응징당해야 하지만, 그 잘못된 정치인들을 “우리가 남이가?”라며 죽어라 찍어주는 유권자들도 응징당해야 마땅하다. 이는 흔히 인과응보, 사필귀정으로 표현되는 하늘의 뜻이기도 하다.
한나라당도 친노세력도 오매불망 낙동강 하나 바라보며 사는 편협하고 근시안적 정치집단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그들은 민족의 문제, 분단의 문제, 평화의 문제, 통일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풀어갈 수 있는 안목과 역량이 원천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허나 민주당은 나라 전체를 보살필 의무가 있는 정당이다. 그게 바로 민주당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자 존재의 이유다. 이를 반갑게 감당한 김대중은 정사(正史)의 승리자가 되었고, 민주당을 낙동강 물그릇 관리인쯤으로 전락시킨 노무현은 야사(野史)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있지도 않은 노무현의 가치와 노선 계승하겠다고 봉하마을 능참봉 노릇이나 하는 게 진정한 전국정당으로 가는 길이 아닌